반응형
앞에서도 간략히 썼지만,
1800년대 초반의 호적에는
실제 그 마을에 사는 사람의 1/3도 호적에 다 안 실려 있다.
이 호적을 모아 통계한 결과 인구가 700만이란 건데
호적의 부실함을 보면 이 인구가 놀랍기 짝이 없다.
필자가 보기엔 19세기에 이미 조선의 인구는
1500-2000만 정도에 확실히 육박해 있는 상태였다고 본다.
1800년대 초반의 인구를 정확히 추산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 시점의 관련 촌락에 거주 하는 모든 사람의 족보를 확보해서
거기 나와 있는 이들과 실제 호적에 등재된 사람을 대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이 힘을 받으려면
동성집단이 많이 모여살았다는 것이 확실한 마을을 선택해야 한다.
필자는 약식으로 한번 시도 해 본적이 있는데,
19세기 초반의 호적 등재자는 실제 사람수의
절반은 확실히 못되고
1/3 정도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자세한 검토는 필자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느낌만 비망기로 적어둔다.
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 노년의 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세기 중엽 호적의 "한량" (0) | 2025.09.08 |
---|---|
여덟분 조상 이름 전혀 모른다는 한량집 (0) | 2025.09.08 |
황구첨정, 백골징포의 의미 (0) | 2025.09.08 |
호적 자료의 검토: 케이스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다 (0) | 2025.09.08 |
호적과는 또 다른 검안 서류 (0) | 2025.09.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