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 38도 39도라지만, 또 그것이 참을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이미 아침 저녁 공기를 보면 완연 가을로 들어서는 징후가 뚜렷하니
조물주 조화는 신비롭기 짝이 없어 이는 결국 여름이 가기 싫다는 발악에 다름 아니라, 그만큼 마지막 결기라고 해두어야 한다.
항용 비유하지만 소나무는 죽기 직전 솔방울을 비처럼 쏟는 법이라 죽음에 대한 직감에서 번식의 본능이 발동하는 까닭이며 또 그제인가 도살장에서 도망친 소 심정이랑 다를 바 하등 없다.
사람이라고 무에 다르겠는가? 마지막이 절규 아닌 사람 있던가?
습도가 약해지니 그만큼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가만 둬도 물러날 여름이라 제풀이 지치도록 놔둠이 순리라 하겠다.
그 여름이 마지막 발악을 일삼는 오늘 차를 몰고 언제나처럼 임진강변을 달려 파주 어느 한적한 야산을 찾았다.
이맘쯤이면 칡꽃이 보라색 절정을 발하니 이번 여름이라고 예외는 없어 유독 야산에 저 빛이 강렬하다.
저 칡은 천만 뜻밖에도 콩과라 일전에 말했듯이 꽃보단, 술보단 그것이 지고 난 자리에서 자라는 깍지를 보면 천상 콩깍지의 그것임에서 왜 저 친구를 콩과로 묵는지 비로소 절감한다.
산초는 이제 꽃이 지기 시작해 알맹이가 차기 시작한다. 저것이 숙성하는 과정은 순식간이라 이 무더위 찜통에 한껏 힘을 비축해야 두어달 뒤 추석 무렵이면 탱글탱글한 까만 콩이 되어 산초기름을 선사한다.
저 이파리 하나 따서 조금 짓이기고는 냄새를 맡아본다. 내가 후각을 잃지는 않았으되 그리 하는 까닭은 산초가 주는 그 특유한 향취가 좋아서라 해 둔다.
저보다 제피가 더 향내가 독하나 그 역시 견디지 못할 것은 아니요 훠궈가 아닐진댄 그 짙은 향내가 몹시도 나는 좋다.
이름을 모르니 식용인지 독인지 분간할 수 없는 버섯이 곳곳에서 낙엽을 뚫고선 일어섰다.
한창일 땐 저 역시 몹시도 맵시가 피어나는 스무살 여인네 얼굴 같기만 한데 이내 시들고 마니 그것이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나태주 선생이었던가?
가까이 보아야 아름답다고, 지나치기 십상인 저 꽃도 자세히 들춰보면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을 선사한다.
칡넝쿨 천하를 휘어감고 참나무는 더 푸른 늦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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