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 냉수리 신라비 전면
예서 문법이란 grammar를 말한다. 전근대 한국사는 절대 다수 기록이 한문이거나 혹은 한자를 빌린 이두류이니 개중 한글문헌이 15세기 이후 일부 있다. 한문은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덮어놓고 읽고 쓰기를 강요하나, 엄연히 한문은 문법 체계가 있는 언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걸 망각하면 평지돌출 파천황 같은 억설이 난무하거니와, 하시何時라도 이를 떠나서 텍스트를 대할 수는 없다.
내가 신라 냉수리비문에 등장하는 '此七王等 차칠왕등'을 '이들 일곱 왕들(these seven kings)'이라고 결코 볼 수 없는 가장 주된 전거로 내세운 논리가 grammar다. 그 grammar 중에서도 호응互應이었다. 무슨 판결에 관여한 일곱 중 왕은 오직 갈문왕 한 명인데 어찌하여 나머지 여섯까지 왕이 될 수 있는가? 왕이 일곱이라면 '此七王(차칠왕)'이지 어찌하여 차칠왕등이겠는가? 도대체 얼빠진 등신들 아니고 누가 저 따위로 푼단 말인가?
영일 냉수리 신라비 전면
A boy was crying라는 말이 있고, 그 다음에 이 boy를 말할 적에 he라고 해야지 she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호응이다. 냉수리비문 '차칠왕등'이 결코 왕이 일곱이 될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이 한문의 호응이라는 그라마 때문이지, 기타 우수마발은 다 필요없다. 그럼에도 내 논문을 인용하는 사람 중에 그것을 나름대로 평가하면서 단 한 명도 내가 문법을 가장 주된 근거로 이야기했음을 말하지 않으니 기이하기만 하다.
송산리 6호분 명문전돌
공주 송산리 6호분 출토 명문전돌에 적힌 글자가 'A爲師矣'이거니와, 이에서 A가 결코 물건이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말할 것도 없이 호응 때문이다. 스승[師]이 되는 A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종래의 압도적인 독법인 '梁官瓦爲師矣'가 허무맹랑한 가장 주된 근거는 바로 이런 문법에서 기인한다. 이를 따른다면 양나라 관아에서 쓰는 기와를 스승으로 삼는다가 되어버리니 기와가 어찌 스승이 된단 말인가?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다.
문법을 알아야 한다. 한문을 알아야 하며, 그런 한문이 철저히 문법에 기반한 언어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허무맹랑한 소리가 줄어들거나 없어진다.
*** 이 글은 2016년 4월 27일, 내 페이스북에 '역사학과 문법'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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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공주 송산리 6호분 명문전돌에 적힌 문구의 경우, 'A爲師矣'에 해당하는 주어가 사람임을 지적한 사람은 종래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師는 사람이므로, 그에 해당하는 주어는 당연히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래에서 처음으로 지적했다. 이전에는 그 어느 누구도 그 주어가 사람임을 의심하지 못했다. 문법으로 보면 도저히 사물이 될 수 없음에도 사물이라고 간주했던 것이다.
김태식, <송산리 6호분 명문전銘文塼 재검토를 통한 무령왕릉 축조 재론 - 오독誤讀이 빚은 기와 "량관와梁官瓦" -, 《충북사학》19, 충북사학회(구 충북대학교 사학회), 20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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