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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를 연 세 신인은 모두 남성이었다. 아메바처럼 단성생식을 할 게 아닌 바에야 짝이 될 여성이 있어야할 터
어느 날 동쪽 바닷가에 큰 나무 함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오곡의 씨앗과 말, 소, 그리고 세 여인과 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세 신인에게 "저는 벽랑국(<고려사>에는 일본국이라 했다) 사람입니다. 우리 임금께서 세 따님을 낳고 이르되 서해 한가운데 있는 산에 신자神子 3명이 강생降生하여 장차 나라를 세우려는데 배필이 없도다 하시고 이에 신臣에게 명하여 세 왕녀를 모시고 가게 하였습니다.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大業을 이룩하시옵소서." 하고 홀연히 구름을 타고 떠나가 버렸다 한다.
이에 세 신인은 세 공주와 혼인하고 탐라국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그 나무 함이 둥둥 떠왔다는 곳인 연혼포에 다녀왔다. 옛 지명은 열운이라고 했고 아마 거기 꿰어맞추어 '연혼포'라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고려사> 등에서는 그저 동쪽 바닷가라고만 했고, 구체적으로 여기가 지명된 사료는 김석익의 <탐라기년>(1918)이 제일 빠르다 한다. 전설은 전설일 뿐 굳이 그들이 어디로 왔네 고증을 두고 싸울 일은 아니지만, 만약 그 공주님들이 여기로 왔다면 자칫 발바닥을 찔려 "아아!"라 하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아아' 용암이 좍 깔려있었고 거기 부딪히는 물살도 결코 옅지 않았다. 그래도 바위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바다멍을 하기는 좋았고, 멀리 성산 일출봉을 보며 옛 전설을 생각하고 역사를 되짚어 볼만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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