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간고등어로 상징되는 염장생선.
싸면서도 짭잘하던 고등어 자반에 대한 기억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소금에 절인 고등어가 많이 소비되었으리라 생각들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안동 간고등어 광고를 보면, 간잽이가 소금으로 절인 고등어가
수레에 실려 조선시대에 이미 원거리 판매까지 한 듯이 이야기 한다.
과연 그럴까?
고등어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일기를 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없는 것은 아닌데 매우 드물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조선시대에 원거리 수송하여 공급되던 생선들은 대개
바싹 건조하여 말린 것들이었는데,
고등어는 이렇게 장기간 말리기에 부적당한 생선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러면 소금에 푹 절여야 할 텐데,
문제는 조선시대에 소금이 그렇게 넉넉하게 많았겠는가 하는 문제가 걸린다.
조선시대 일기를 보면 소금은 생필품으로 사족 간에 주고 받던 선물 리스트에 버젓이 이름을 올린다.
그만큼 수량이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미료로도 썼지만 채소를 절이는 용도로 썼을 텐데,
과연 생선 절이는 데까지 쓸 만한 여유가 있었을까?
필자가 보기엔 조선시대 소금 생산은 언젠가 말했듯
바닷물을 끓여 얻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소금 생산이 대량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아마도 소금 생산이 대량화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천일염전이 한반도 서남부 일대에 만들어지면서부터일 텐데,
소금을 풍부히 생선 절이는데 쓰며 염장한 생선을 내륙 지역까지 공급한 시점은 이렇게 소금이 넉넉하게 생산된 이후 시점이 아닐까 막연히 짐작해 본다.
그렇지 않고는 조선시대 일기에서 염장 생선이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많지 않다.
*** [편집자주] ***
조선시대 생선 소비 패턴은 따라서 건어물 아니면 훈제품이었으리라.
말린 생선, 혹은 살짝 구워 수분을 없애지 아니한 글자 그대로의 생선은 겨울철에나 공급이 가능했을 것이며 혹 내륙지방에선 이렇게 겨울철에 들여온 생선을 절여서 먹었든가 젖갈을 만들었을 수는 있겠다.
그러고 보면 자린고비 이야기가 곧 건어물 아니던가?
이 염장 문제는 그만큼 심각하나 이를 제대로 고민한 분석을 만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정작 해야 할 연구는 하지 않고 뻘짓만 일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의식주 말고 도대체 무엇을 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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