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설원랑, 한치 변함없던 미실의 충신이요 남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2. 6.
반응형

(설원)공은 건원建元 14년(549)에 나서 건복建福 23년(606) 7월에 卒했다. 그때 미실美室 궁주宮主가 이상한 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공이 밤낮으로 옆에서 모셨다. 미실의 병을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밤에는 반드시 기도하였다. 마침내 그 병을 대신하였다. 미실이 일어나 슬퍼하며 자신의 속옷을 함께 넣어 장사를 지내며, ‘나 또한 오래지 않아 그대를 따라 하늘에 갈 것이다’고 하니 그때 나이 58세였다. (화랑세기 설화랑전)

 

역사상 미실이 실제로 이렇게 생겼을까? 



설원랑薛原郎은 설화랑薛花郞이라고도 하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모두 보인다. 그가 바로 원효의 직계 선조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최초의 화랑이라는데 저 화랑세기가 발견됨으로써 그가 실제로는 7세 풍월주다. 다만 540년 제정된 화랑이 폐지되었다가 부활했을 적에 그 부활한 첫 풍월주가 바로 설원랑이다.

아울러 이를 통해 그의 상세한 행적 또한 밝혀졌거니와 무엇보다 생몰년이 549~606년으로 확실히 밝혀졌다.

 



그는 미실의 변함없는 충신이었다. 저 화랑세기를 통해 신라 장송의례 일단이 드러나거니와 미실이 그의 속곳을 넣었주었다는 대목이 그것이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내가 너의 여자라는 징표였다.

저 장면 무심한 듯 하나 의미심장하다.

사랑을 하려거든 설원랑처럼 하라.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