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S & MISCELLANIES

오동잎 쳐다보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7. 4.
반응형


출퇴근길 수송동 우리 공장 조계사 인근 어느 골목길에서 매일 마주치는 어느 식당 에어컨 배기구 앞 오동나무다.

아직 나무라기엔 풀에 가까운 상태지만 그것이 쑥쑥 커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늘은 또 얼마나 자랐나 살핀다.

콘크리트가 없거나 갈라진 틈을 어케든 비집고 들어간 오동 씨앗이 어찌하여 예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나 암튼 오동은 번식욕 혹은 번식력이 죽기 직전 솔방울을 비처럼 뿌리는 소나무보다 왕성한 것만은 틀림없다.

콘크리트 도시 곳곳에서 저리 발아했다가 나무가 되기전 뽑힌 오동이 어디 한두 그루 혹은 포기겠는가?

기와 건물 폐가 지붕에도 어김없이 뿌릴 박는데 재수없는 놈은 사람 사는 한옥 지붕에 발아했다간 이내 뜯기고 만다. 지붕을 망치는 까닭이다.

이젠 내 키보다 훌쩍 자란 저 오동을 음식점 업주가 언제 뽑아버릴까 조마조마하다만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행히 주인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배기구 쪽으로 난 이파리 서내개만 뜯어제꼈을 뿐이다. 그 단면 보니 부엌 식칼로 잘라낸 듯하다. 




이젠 내 머리 우 하늘 가린 이파리를 올려다본다.

치골 선연해 어디선가 화석 형태로 만나는 저 아득한 시대 삼엽충 같다.

소나기 내리던 날 널 하나 따서 우산으로 쓰곤 했으니 너가 없으면 모란대 이파리도 애용했다. (내 고향에선 서울에선 토란이라 부르는 걸 모란이라 한다.)

나한텐 소나기 같이 그을 윤초시네 증손녀는 없었다.

그래도 초가 추녀 끝 지붕얹은 지푸라기 따라 뚝뚝 떨어지는 그 빗물이 우두둑우두둑 모란 이파리 오동 이파리 때리는 그 선율은 아련하다.

폭우가 첫사랑 애탐이 열병처럼 쏟아지는 그런 날

소나기 받침하는 너를 보고 싶다.


***

 

콘크리트가 대표하는 도시화 시대 최적화한 식물이 오동나무다. 조만간 서울은 오동나무 천지가 될 터이며, 그리하여 서울이 최대 가구산지가 될 날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오동은 좀이 슬지 아니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