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은 877년 생이라, 훗날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궁예를 타도하고 고려를 개창하니, 이때가 918년, 마흔두살 때였다.
이렇다 할 건강 이상이 없는 한, 왕조를 개창하기에는 딱 좋은 나이라, 쉰여덟 송장되기 일보 직전에야 엎혀서 조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랑은 제반 조건이 아주 달랐다.
918년 마흔둘에 왕조를 개창한 왕건은 25년간 왕 노릇을 하다가 943년에 사망하니, 향년 67세였다. 이 역시 험한 꼴 안 보고 죽기에 딱 좋은 나이다.
왕건은 딱 좋은 시기에 딱 좋게끔 권력을 잡았고, 딱 좋은 시기에 비름빡 똥바르기 전에 죽었으니 이보다 더 운 좋은 개창주 있을까 싶다.
느닷없이 권력을 잡은 개창주들은 여자관계가 보통 복잡다기한데, 간단히 말해 말이 좋아 합종연횡이지, 이 합종연횡을 무엇으로 보장하겠는가?
동서고금 막론하고 이 합종연횡이라는 딜에 여자가 끼기 마련인데, 가장 흔한 방식이 장인 사위 되기였다.
당신 나한테 복종하는 대신 나는 당신한테 안전을 보장하겠소. 그것을 실질로 보여줘야 하니, 내가 당신 딸을 맞아들여 당신을 장인으로 생평 섬기겠소, 혹 아시오? 거기서 난 아들이 보위를 잊는다면, 당신 피가 이 나라 보위를 잇는 것이 아니겠소? 콜?
이렇게 해서 이른바 호족이라는 사람들을 하나씩 자기 사람으로 포섭해간 왕건의 이런 엽색 행각은 935년, 신라를 고스란히 넘겨 받는 과정에서도 반복하는데,
이때는 급이 달라 신라가 아무리 명목만 남았다 해도, 그 상징성에서 어찌 다른 놈팽이 지역 토호들과 비교하겠는가?
935년이라면 왕건이 이미 쉰아홉, 환갑을 목전에 둔 때였다.
이 신라 통합과정에서 왕건은 경순왕과 주고받기를 선택하는데, 첫째 귀순한 경순왕한테 자기 딱 낙랑공주를 주어 사위로 맞는 대신, 신라 종실에서도 적당한 규수감을 물색해 작은마누라로 들인 것이다.
본명 김부金傅인 경순왕은 고려 귀순 뒤에도 40여 년이나 더 호위호식하며 살다가는 서기 978년 음력 4월 4일에 졸하니, 이는 그가 고려 귀부 당시 한창 나이였다는 뜻이다.
그랬다. 경애왕이 견훤한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엎혀서 왕이 된 김부는 나이가 많아봤자 30대였다.
이런 그에게 마의태자가 천년 사직을 바쳐서는 안 된다고 극간했다 하거니와, 이 당시 경순왕 나이를 고려할 때 마의가 저 정도로 귀순을 반대할 만큼 충분한 나이가 되었는가 심히 의심스럽기는 한데, 중요한 것은 그에게는 마의를 낳은 조강지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려 귀순과 더불어 낙랑공주를 받아들이게 된 김부한테 조강지처와 이 공주 관계는 어땠을까?
이 조강지처가 생존한 상태였다면 예우가 심히 곤란해진다.
신라왕실을 그대로 들어서 왔기에 그 조강지처를 함부로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 해서 그런 조강지처를 하루아침에 첩으로 강등케 할 수는 없다.
나는 병렬이었다고 본다. 간단히 말해 김부는 정식부인이 둘이었다고 본다. 마의를 낳은 본래의 조강지처와 왕건이 하사한 딸 낙랑공주는 부인으로서는 같은 지위를 지키는 같은 정식부인들이었다고 본다.
본래 한국사는 줄곧 일부일처제였지만, 이와 같은 비상사태에는 언제나 변형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김유신 동생 문희였다.
김춘추 아이까지 밴 문희는 자칫 조강지처가 있는 김춘추의 첩으로 들어가야 할 판이었으나, 김유신의 계략에 따라 포석사에서 정식 혼인을 올림으로써 정식 부인으로 대접받아 당당히 정식 부인으로 김춘추 집에 들어갔으니, 이렇게 해서 김춘추는 정식 마누라 둘을 거느리게 되었던 것이다.
정식 부인이 복수인 경우가 가능한 때는 딱 하나다. 왕이 허락했을 때다. 문희를 정식부인으로 삼게 한 이는 당시 진평왕 시절 차기 왕위계승권자 선덕이었다.
김부 역시 그랬다. 정식 마누라 둘을 왕건의 재가를 얻어 거느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왕건은 낙랑을 김부한테 주는 대신 누구를 받아들였는가?
고려사 권 제88 열전 제1 후비后妃 전에 의하면 왕건의 여인 중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 김씨金氏는 본래 신라新羅 사람으로 잡간匝干 김억렴金億廉 딸이다.
김부가 나라를 들어 귀순할 뜻을 밝혀오자 사신을 보내서 말하기를 “지금 왕께서 나라를 과인에게 넘겨주신다고 하니 그 내려주는 바가 참으로 큽니다. 바라건대 신라 종실宗室과 혼인하여 길이 장인과 사위로서 잘 지내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그에 대한 답례로 신라가 김부의 큰아버지 김억렴 딸을 왕건한테 보내니 그가 바로 신성왕태후라 한다.
이 왕태후가 훗날 고려 왕실을 일대 혼란에 빠뜨린 불륜 스캔들 주인공의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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