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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부에 밤이 크다는 이야기는 삼국지 동이전 외에도 있다.
삼국유사 원효전에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사라수에 관해서는 민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성사의 집은 본래 이 골짜기 서남쪽에 있었는데, 어머니가 아이를 가져 만삭이 되어 마침 이 골짜기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하고 창황하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선 남편 옷을 나무에 걸고 그 안에 누워 있었으므로 [그] 나무를 사라수라고 하였다.
그 나무 열매도 보통 나무와는 달랐으므로 지금도 사라밤[裟羅栗]이라고 한다.註 200
예부터 전하기를, [사라사의] 주지가 절의 종 한 사람에게 하루 저녁의 끼니로 밤 두 개씩을 주었다.
종은 관가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관리가 [그] 밤을 가져다가 조사해보았더니 한 개가 바루 하나에 가득 찼다.
이에 도리어 한 개씩만 주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때문에 이름을 율곡栗谷이라고 하였다. (한국고대사료DB)
무슨 이야기일까?
마한 뿐 아니라 한반도 남부에는 밤이 꽤 컸다는 이야기가 되겠고,
밤나무를 골라 심어 큰 밤으로 만드는 인위적 선택이 꽤 오래 한반도 남부에서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일본이 팥알이 크다고 팥은 자기들이 처음 재배했다면,
밤나무 역시 같은 논리로 한반도에서 처음 재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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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에 있었다는 엄청 큰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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