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권4, 세가世家4 에 보이는 구절이다.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은 이름이 순詢이며, 자字가 안세安世다. 안종安宗의 아들로, 모친은 효숙왕후孝肅王后 황보씨皇甫氏다. 성종 11년(992) 임진년 7월 임진일에 태어나, 조금 나이가 들자 대량원군大良院君에 책봉되었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천추태후千秋太后가 그를 꺼려한 나머지 강제로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되게 했다.
처음 숭교사崇敎寺에 있을 때 어떤 승려가 꿈을 꾸었으니, 큰 별이 사원 뜰에 떨어지더니 용으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변하는 내용이었으니, 이 사람이 곧 왕이었다.
이 일 때문에 여러 사람이 그를 특출하게 여기게 되었다.
목종 9년(1006) 삼각산三角山 신혈사神穴寺로 옮겨 살게 되자, 천추태후가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해치려고 했다.
마침 사원에 있던 늙은 승려가 방 밑에 구멍을 파서 숨기고 그 위에 침상을 놓아두어 그를 지켜 주었다.
현종 19년(1018) 무오년
○ 丁丑 王子生於延慶院, 賜名曰亨, 改院爲宮, 仍賜禮物.
○ (가을 7월) 을해일. 구정毬庭에서 큰 초제醮祭를 지냈다.
정축일. 왕자가 연경원延慶院에서 탄생하자 형亨(훗날의 정종)이라는 이름을 내려주고 원院을 궁宮으로 승격시켰으며 예물을 내려주었다.
○ 이 달에 제위원濟危院을 수리했다.
○ 동여진 사람인 오두주烏頭朱 등 30여 명이 와서 토종말과 병장기를 바치므로, 의복과 물품을 내려주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현종 9년(1018) 무오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 8. 30., 경인문화사)를 약간 손본다.
***
현종이 피신을 했다는 삼각산三角山 신혈사神穴寺가 어딘지 모르겠다. 이름으로 보아 동굴이 있던 곳에 만든 사찰인가 본데, 북한산에 이런 조건을 갖춘 데가 더러 있다.
후사가 없어 애를 태우던 그가 마침내 재위 19년째야 정비가 아닌 후궁이 왕자를 생산하니 여러 조치를 단행하게 되거니와
무엇보다 그 어미를 원주院主에서 궁주宮主로 격상했다.
신라를 유습한 고려는 후비제도 역시 그것을 계승했으니 후궁들도 여러 등급이 있어 그네들이 기거하는 공간은 등급이 있었으니 院보다 宮이 높았다.
그런 공간 주인들, 곧 해당 후궁들은 그 이름에 따라 무슨무슨 원주院主니 궁주宮主니 일컬었으니, 저에 의해 연경원延慶院이란 곳에 기거하던 현종 후궁은 왕자를 낳았다 해서 일약 궁으로 승격하니
연경원延慶院은 연경궁延慶宮으로 바뀌고
그 주인은
(연경)원주院主에서 (연경)궁주宮主로
특진한다.
내가 살피니 고려시대 후비제도는 제대로 연구된 것도 없어 관련 글이라 해서 싸지른 것들이 하나같이 수준미달이라 볼 만한 글이 없었다.
院이 뭐고, 宮이 뭐며 院主가 뭐고 궁주宮主는 뮌지에 대한 해명은 없다시피 하다.
이 외에도 전殿이 있고 전주殿主가 있으니 이런 누층하는 후비와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에 대한 봉작탐구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런 봉작시스템이 일대 변화를 겪게 되거니와 바로 元 황실 공주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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