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17 17:09:50
<참위(讖緯)에 맞선 비판주의자 왕충(王充)>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전한(前漢)과 후한시대는 사상사 혹은 종교사적으로는 참위(讖緯)의 전성시대였다.
이 시대 제왕 중에서도 후한 왕실 개창주인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는 그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가 한 왕실을 복권한 지 2년 뒤인 건무(建武) 3년(서기 27)에 태어나 70년 정도를 살다간 왕충(王充)이 살던 후한(後漢) 초기는 특히 더 그랬다.
이 중에서도 점성술과 결합한 일종의 신비적 예언술인 참위는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용납하기 매우 힘들었다. 환담(桓譚. BC 24-AD 56)이란 사람은 그것을 반대하다가 광무제에게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나아가 참위설은 거의 필연적으로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 혹은 천견설(天譴說)과 연동된다. 하늘이 일으키는 홍수나 가뭄과 같은 각종 천재지변(天災地變)은 인간, 특히 제왕이 잘못을 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니, 그것을 물리치거나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착한 일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인상관(天人相關)이란 하늘과 인간이 연결돼 있다는 뜻이며 천견(天譴)이란 하늘이 벌을 내린다는 뜻이다.
왕충은 현재까지 전하는 그의 유일한 철학적 저작인 '논형'(論衡)에서 "선(善)하면 길(吉)함을 만나고 악하면 흉함을 만나는데, 그것은 천지자연이지 사람 때문에 그러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대수롭지 않은 말인 듯하지만, 여기에는 참위설이 대표하는 천인상관설을 반대하는 그의 생각이 매우 분명히 표명돼 있다.
천재지변을 인간의 행위와 연결시키는 재이설(災異說)을 부정하는 생각은 분명 극단적 합리주의자로 꼽히는 선진시대 사상가 순자(荀子)의 영향이다.
순자는 "기우제를 지낸 뒤 비가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말한다. 무엇 때문이 아니라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가 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왕충의 합리주의 정신은 나아가 옛 성인들이 알을 깨고 나왔다는 등의 기록이 모조리 거짓이라고 갈파하는가 하면, 그토록 존경해 마지 않은 공자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조롱에 가까운 비판까지 한다.
예컨대 가장 아끼는 제자인 안연이 죽자 도가 넘칠 정도로 비통해 했으면서도 막상 다른 제자들이 공자가 끌고 타고 다니는 수레를 팔아 안연을 매장할 곽(槨)을 만들어 주자고 하자, 공자는 "대부가 걸어다닐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이에 대해 왕충은 안연이 죽자 그렇게 비통해 했다면, 수레라도 팔아 곽을 만들어 주었어야 한다고 공자를 공박한다.
공자가 이러니 맹자나 한비자 또한 무사할 리 만무한 법. "왕께선 하고 많은 것 중에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라고 초청자인 양혜왕(梁惠王)을 맹자가 무안준 일은 매우 무례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사람이 영원불사하는 신선(神仙)이 될 수 있다는 신선사상도 용납될 리 없다. 아울러 합리주의적 비판 정신이 지나쳐 수사적 과장법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면이 논형 곳곳에서는 노출되고 있다.
성균관대 임옥균 연구조교수가 집필해 이 대학 출판부가 기획하는 '유학사상가총서' 시리즈로 최근 선보인 '왕충'(王充)은 '한대 유학을 비판한 철학자'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비판정신으로 일관한 2000년 전 한 지식인의 전형을 안내한다.
아쉬운 대목이 종종 보이는데, 예컨대 왕충의 시대 맹자를 주자성리학이 바라본 성인(聖人)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의 시대를 풍미한 통치이론인 황로학(黃老學)에 대해서도 부족한 서술이 엿보인다. 206쪽. 1만3천원.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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