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26 09:53:21
<한대 황로학의 보고(寶庫) 「회남자」>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한유(韓愈)는 '원도'(原道)라는 글에서 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공자·맹자로 이어지는 유가 계통론을 확립하면서 당시까지 중국 학술사를 다음과 같이 개괄했다.
"주(周)나라 도가 쇠미해지고 공자가 돌아가시자, 진나라 때는 책이 불태워졌으며 한대에는 황로(黃老)가 성행했다."
그렇다면 한대를 지배했다는 황로학이란 무엇인가? '황로'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앞 글자를 딴 말인데 이미 전한시대 역사인 「사기」에서 보인다.
황제나 노자의 역사적 실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없지 않지만 두 인물은 도가철학에서 조(祖)와 종(宗)을 이루는 양대 산맥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앞세운 황로학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 도가철학을 주축으로 하고 상앙과 순자 및 한비자 계열의 법가와 다른 흐름이 혼합된 정치사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황로학의 주축이 도가철학이라는 사실이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사상사적 흐름이 법가라는 사실이다.
노자와 장자가 말하는 도가철학은 핵심이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수렴된다.반면 법가는 철저히 법(法)을 중시하는 소위 유위(有爲)의 대명사격이다.
언뜻 전혀 상반되는 듯한 두 철학이 정치사상으로 접점을 이룰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실제 이런 시대가 있었다. 한유가 말한 한대(漢代)가 바로 그랬다.
요즘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황로학의 골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군주는 말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 왜냐하면 군주가 말을 많이 할 경우 신하들에게 속내를 간파당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신하들이 그것을 이용해 군주를 치받는다.
둘째, 신하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전권을 위임하라. 그런 다음 신하들의 공적을 가려 상벌을 철저히 하라. 조심할 점이 있다. 너무 잘한 신하도 쳐라. 지나치게 잘 대해주면 군주에게 '기어오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황로학이다. 겉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체 하니,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 혹은 허정(虛淨)함이며, 그러면서도 뒤에서는 끊임없이 신하들을 감시하며 상벌을 내리고 있으니 법가가 말하는 법치(法治)인 것이다.
따라서 황로학은 굳이 성격을 규정하자면 '무위(無爲)의 유위(有爲)'인 셈이다.
한대에 크게 유행한 황로학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이다. 한 고조 유방의 손자로서 회남 땅을 다스리는 제후인 회남왕(淮南王)에 봉해진 유안(劉安)이 그의 식객들과 함께 완성한 이 책은 황로학이라는 한대 주류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거대 보고에 비유될 수 있다.
이석명 경희대 강사가 도서출판 사계절이 기획하는 '오늘의 고전' 시리즈 중 하나로 집필한 「회남자」는 이 문헌이 태동된 시대적 배경과 거기에 나타난 특징을 알기 쉽게 소개한 「회남자」의 안내서이다. 244쪽. 1만2천원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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