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26 17:50:01
「한비자」 국내 최초 완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권력이란 군주에게 연못과 같으며 신하란 그 권력 속의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가 연못에서 튀어나오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군주가 권력을 신하에게 빼앗기면 다시 돌려받지 못한다"
"후비(后妃)나 부인, 태자는 군주가 빨리 죽었으면 한다. 그러므로 자기 죽음을 이(利)로 취할 수 있는 자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할 수는 없다"
군주는 어항에 든 고기처럼 신하를 철저히 가둬두어야 하며 부자(父子)나 부부 관계도 이익으로 연결돼 있다고 선언하는 이 말은 「군주론」에 나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회를 냉혹한 계약관계로 파악한 장-자크 루소가 한 말도 아니다.
기원전 233년, 젊은 날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했던 승상 이사(李斯)의 계략에 휘말려 옥사한 한비(韓非)가 남긴 말이다.
그가 남긴 글은 「한비자」(韓非子)라는 문헌으로 정리돼 지금에 전하고 있다.
중국 고전이 대개 그렇듯이 전체 55편으로 구성된 「한비자」중 일부는 후대의 위작으로 생각되는 작품도 있다.
국내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유래한 이른바 실증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아직도 어느 책이 가짜인지, 어떤 책 중 어느 부분이 가짜이고 진짜인지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는 이런 논쟁에서 벗어나야 할 듯 싶다.
중요한 것은 진위 여부가 아니라, 설혹 가짜라 하더라도(예컨대 「주례」라는 문헌은 전체가 가짜다) 그것이 이후 인간사에 어떠한 영향을 얼마만큼 끼쳤는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전편에 걸쳐 참으로 냉혹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비는 철두철미 인간관계를 이(利)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익을 지향하는 동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러한 이익 앞에서 의(義)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한비의 생각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임금과 신하는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 관계도 이렇게 파악하는데서 잘 드러난다.
위에 인용한 「한비자」의 두 구절은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한비자」는 누가 뭐래도 전근대, 군주가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지배하던 왕조국가의 소산이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인간관계는 예외없이 군주와 관계된다.
말하자면 「한비자」는 제왕학에 속하는 학설이라 할 수 있고 더욱 범위를 좁힌다면 군주가 신하를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관한 지침이다.
군신관계를 이(利)로 파악했으니 군주는 신하에 대해 총애하는 사적인 감정을 보여서는 아니되며 철저히 위엄을 보여야 한다.
또 이익이 생기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때 신하는 군주라는 울타리를 빠져나가거나 반기를 들게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해 강력한 권위를 보여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흔히 법가사상가라는 한비의 철학을 뒷받침하는 법(法)과 술(術), 세(勢)의 삼두마차가 등장한다.
법이 오늘날의 실정법에 해당한다면 술은 신하를 통제하는 권모술수라고 할 수 있다. 세는 법과 술을 발휘하는 힘, 즉 권력이다.
최근 여기에 주목한 한비철학 연구자들이 마키아벨리와의 연관성을 찾는 데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군주론」이 군주의 권위 강화를 명분으로 내걸었으나 그 결과는 군주의 실체에 대한 무차별 폭로였다면, 「한비자」는 그 반대로 군주의 절대화, 신성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가 관찰된다.
사실 한비는 마키아벨리보다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한비자」는 정치학, 철학, 문학 등 다방면에서 이토록 중요한 문헌임에도 완역본이 없었기에 일반인이 그 참맛을 보기 어려웠다. 시중에 나돌아 다니는 「한비자」번역본은 예외없이 축약본이다.
그런데 올해 칠순을 맞은 이운구 전 성균관대 교수가 최근 국내 최초의 「한비자」 완역본을 한길사의 한길그레이트북스 제54-55권으로 내놓았다.
분량이 많기 때문에 두 권으로 분철했다. 전2권 968쪽. 각권 2만5천원.
taeshik@yna.co.kr
(끝)
***
한비자를 읽어보면 이 사람 말을 열라 잘한다. 하지만 실제는 말더듬이였다.
그는 남들이 억제할 때 발설했다. 남들이 웅크릴 때 뱉어버렸다.
인간 심연의 욕망을 폭로했다.
그가 시종일관 배척받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단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힘이다.
#한비자 #욕망 #본능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림별곡翰林別曲 '뎡쇼년'은 고려판 '오렌지족'? (0) | 2023.02.11 |
---|---|
제갈량諸葛亮, 충신보다는 냉혹한 법가法家 (0) | 2023.02.11 |
왕충王充, 참위讖緯를 거부한 리얼리스트 (0) | 2023.02.11 |
회남자淮南子, 한대漢代 황로학의 보고寶庫 (0) | 2023.02.11 |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 만난 최치원 (1) | 2023.02.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