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이용한다 해서 혹은 책이나 논문 쓸 때 요긴하다 해서 서재 숙직실에 가까이 꽂아둔 책 일부다. 보다시피 난 잡탕이다.
여러 번 말했듯이 난 《안씨가훈顔氏家訓》을 혹닉한다 할 정도로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집구석에는 저 번역본으로 국내본 네 종류, 일본어 역본 1종류, 그리고 중국 본토에서 나온 주석본이나 교감본 여러 종을 구비했다.
저걸 붙잡고 있다 보니, 그에서 어딘가 익숙한 구절이 있어, 그가 바로 최치원임을 알고는 <황금방의 비애>라는 논문 하나를 걸신 걸린 듯 쓴 일도 있다.
저에서 안지추는 후손들한테 어떤 기예 하나 잘 하는 일로 소문나지 마라고 가르친다. 글씨 잘 쓴다 소문 나면, 평생 남의 비문 써 주다 볼짱 다 본다 했다. 놀랍게도 최치원이 사산비명에서 저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을 목도했다.
물론 최치원은 그 구절이 안지추에서 따왔다는 말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해서 따져보고, 또 원문을 비교하니 바로 안지추였다.
최치원....
금의환향했지만, 신라말도 어눌한 그를 신라가 기다린 것은 그가 꿈꾼 책략가가 아니었다. 토황소격문으로 문명을 날린 그를 기다린 것은 고통스런 비문들이었다. 그는 생평 남의 비문만 써주다가 볼짱 다 봤다.
신기하게도 그 신세를 사산비명에서 그가 토로하는 장면을 목도했다. 안지추에 기대어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최치원을 봤다.
저 글은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지만, 최치원, 그의 생을 꿰뚫는 역작이라고 감히 자평한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2017. 11. 4)
***
앞에서 말한 황금방 운운 글은 김태식金台植 <심학자心學者와 구학자口學者 사이, ‘황금방黃金牓’ 최치원의 딜레마>, 《신라사학보》 제10호, 신라사학회, 2007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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