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3년, 동부승지를 지낸 김응남金應南(1546~1598)이 제주목사로 임명된다. 보통 무과 출신이 임명되는 제주목사 자리에 문과 출신이 임명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기실 이는 동서 분당이 가속화되던 시점에 '동인의 괴수'로 지목받던 그를 조정에서 떨어뜨려놓으려는 좌천성 인사였다. 이를 두고 사간원에서는 부당함을 논하였다. 그런데...
제주목사 김응남은 오랫동안 경악經幄에서 모시고 있으면서 많은 계옥啓沃을 하였고, 승선承宣이 되어서는 부지런히 있는 힘을 다했던 자로서, 전하께서도 일찍이 믿고 총애하였던 바인데 죄명이 드러나지도 않은 것을 침윤浸潤의 참소만을 치우치게 믿으시고 이매魑魅의 고장에다 던져버리셨습니다. 근래 빈번한 척축斥逐으로 하여 명류名流는 거의 다 없어지고 참소하는 입들이 그 틈을 타서 대성臺省(사헌부와 사간원)도 텅 비어 갑니다. 백료百僚가 겁에 질려 떨고 있고 충당忠讜이 기가 꺾여 있는데, 이는 사직을 위하여 결코 복된 일이 아닙니다. 응남을 제주로 보내라는 명도 거두어주소서.
- <선조실록> 권17, 선조 16년 9월 1일
김응남을 제주목사로 임명한 일이 부당하다는 이야기는 알겠는데, 왜 제주를 '이매의 고장'이라고 극언하느냐 이 말이다.
이매란 '이매망량魑魅魍魎' 곧 도깨비다. 제주도도 엄연히 사람 사는 고장이거늘 도깨비가 뭡니까 도깨비가.
공유급 미남이 산다고 하면 인정하겠습니다만.
*** 편집자注 ***
동부승지同副承旨는 흔히 말하기로는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承政院이라는 기구를 구성하는 각 직능별 우두머리 중에서도 형벌을 관장하는 형조刑曹 담당 수석비서관이다.
품계는 정삼품正三品 당상관堂上官이라 매우 높고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므로 특별대접을 받았다.
제주목사는 지금의 제주도를 관할하는 현지 최고 관부인 제주목濟州牧을 관장하는 최고 지방장관으로, 품계는 동부승지와 같은 정삼품 당상관이다.
따라서 저 인사는 언뜻 보면 수평 이동이나, 근무처를 왕의 지근에서 저 머나먼 제주로 옮기는 일이었으니, 당연히 그 처사는 좌천이라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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