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시를 만나다>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 1708~1766)이라는 어른이 계셨다. 경상도 안동 내앞 분으로 평생 벼슬한 적은 없었으나 효행과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30세 되던 해, 그의 아버지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 1684~1747)이 그 스승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을 변호하였다가 의금부에 잡혀가 국문을 받고, 제주 정의현으로 유배된다.
이에 김낙행은 아버지를 모시고 제주까지 따라가 1년 남짓 같이 지낸다.
이때 제주성 정경을 장편시로 남겼는데, 제목이 "제주성의 모습을 기록하여 돌아와서 아버님께 올리다〔記濟州城形 歸呈大人〕"이다.
18세기 중엽 제주읍성 내외의 모습을 제법 구체적으로 그린 내용이 재미있어 소개한다.
번역은 우선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종합DB의 것을 옮기나, 추후 다듬어보고자 한다.
외딴섬 보루 서쪽의 아득히 바라보이는 땅 / 別島堡西莽蒼地
한라산 북쪽 팔뚝이 바다로 드리워진 곳에 / 漢挐北臂垂海流
평평한 언덕 둘러싸고 중간에 국면이 열리니 / 平岡環合中開局
이곳에 바로 천 년 된 웅장한 고을이 있다네 / 乃有千年古䧺州
석성이 견고하고 치밀하여 방어해낼 만한데 / 石城鞏緻可阻守
그 높이 여러 길 되고 둘레는 오 리쯤이라네 / 數丈其高五里周
성벽 아래의 가시나무숲은 너무도 무성하고 / 城下枳林何茂密
성벽 위의 날렵한 용마루는 늘어선 문루이네 / 城上飛甍列譙樓
판교를 참호에 걸쳐서 인마가 다니게 하니 / 板橋駕塹通人馬
양쪽의 나무인형에 쇠사슬 갈고리 감겨있네 / 兩邊木偶鐵索鉤
성에 올라 쇠사슬 당기면 판교가 설치되니 / 登城引索橋拆開
급변이 있을 때에 외침을 막기 위함이라네 / 蓋云緩急備外憂
굽은 성첩 겹겹이 둘렀고 쇠 빗장 웅장하니 / 曲堞回複鐵關壯
육지의 고을이라도 이와 짝할 곳 드무리라 / 陸地州郡鮮此儔
바다 너머 완벽한 성곽과 서로 안팎이 되니 / 完城隔海相表裏
국가가 정히 남쪽 변방을 걱정하지 않겠네 / 國家政不憂南陬
북쪽 언덕의 석문이 무지개처럼 누웠으니 / 北岸石門虹霓卧
바닷물이 달려와서 성의 도량에 들어오네 / 海水走入一城溝
성 남쪽의 땅 형세는 산에 기대어 높으니 / 城南地勢依山高
또렷한 성의 형세는 앉아서도 알 수 있네 / 歷歷城形坐可收
성문 밖의 몇 리쯤에 연무당이 있으니 / 門外數里演武堂
이곳이 바로 훈련하던 장소가 아니던가 / 莫是是處閱操不
성 밖의 풍경은 두루 돌아볼 겨를 없으니 / 城外未暇周覽遍
우선 성 안에 나아가서 하나둘 찾아보리라 / 且就城裏一二求
관덕정이 큰 길거리 가에 있고 / 觀德亭在衢路上
관덕정 앞 백 보 밖에 과녁이 내걸렸네 / 亭前百步懸鵠帿
무기고 서쪽은 정사를 펼치는 관아이니 / 武庫西畔布政司
그 가운데 병영 건물은 깊고도 그윽하도다 / 其中營舍深而幽
겹겹 문과 에워싼 담장은 길을 헤매게 하고 / 重門繚垣迷所向
영롱한 단청 빛은 사람 눈을 어지럽게 하네 / 朱碧玲瓏盪人眸
연희각과 와선각이라는 두 누각 안에는 / 延曦卧仙兩閣裏
추위와 더위에 맞추어 고을 원이 앉아있네 / 凉燠隨宜坐州侯
누각 아래의 벽돌 정원은 넓고도 시원하고 / 閣下庭甓曠且闊
당의 처마는 밤에 푸른 휘장이 드리워지네 / 堂簷夜垂靑布幬
남쪽 담장의 푸른색은 과수원의 빛이니 / 南牆碧色是果園
천 그루 감귤나무 유자나무 뒤섞여있네 / 橘柚千樹相綢繆
누각 동쪽 가까운 곳에 망경루가 있으니 / 閣東近有望京樓
붉은 기둥 단청한 들보가 구름 밖에 떠있네 / 朱楹畫棟雲外浮
누각에 올라 만 리 바다를 굽어보노라니 / 登臨俯視萬里海
먼 곳의 손과 나그네가 시름을 풀 수 있네 / 遠客羈人可暢愁
넓은 처마가 정히 종각 북쪽에 서 있으니 / 廣宇正臨鐘閣北
애매헌이라 이름 한 곳은 고을 원의 휴식처네 / 軒名愛梅侯所游
매헌에 이르기 전에 동쪽으로 걸음 옮기면 / 未及梅軒東轉步
긴 행랑에는 여섯 개의 벽유가 늘어 서있네 / 長廊布列六碧油
약방의 동쪽 가에는 공장이 연이어져 있으니 / 藥房東邊工肆連
벽 위에는 활고자와 화살이 무수히 걸려있네 / 壁上無數掛彄鍭
또 들으니 그 중간에 홍화각이 있다 하고 / 又聞中有弘化閣
매헌 머리에 또 감영 청사가 있다고 하네 / 營廳更在梅軒頭
그 밖의 관아 건물들 모두 크고 화려하지만 / 其餘堂廨俱鉅麗
뒤섞여 있고 중첩되어 모두 구경하기 어렵네 / 錯落重疊難悉搜
북쪽에 객관이 있고 서쪽에 이아가 있으며 / 北有客館西貳衙
향교와 서원은 남쪽 언덕에 놓여 있다네 / 黌堂書院直南丘
서원 사당에 제향되는 분은 누구이던가 / 院祠躋享問誰某
충암공과 청음공과 송우암 공이라네 / 冲庵淸陰與宋尤
향교 건물 뒤에 두 개 당이 우뚝하니 / 黌堂之後屹兩堂
그 이름은 운주당과 찬주헌이라네 / 名以運籌及贊籌
여염집이 즐비하여 천 호는 될 만하고 / 閭閻櫛比可千戶
인구는 자못 내륙에 비길 만큼 많다네 / 人物頗與中土侔
길 양쪽 비석은 돌과 구리로 만들었는데 / 夾道荒碑石兼銅
그 옛날 어진 원님의 공덕이 남아 있네 / 古昔賢侯功德留
시내 곁의 바위 무더기가 절로 산을 이루니 / 臨溪叢石自成岑
바위 표면에 붉은 글자로 누대 이름 새겼네 / 石面紅字臺名鏤
낙육재 가운데서 고을 선비를 길러 내니 / 樂育齋中養州士
건물의 건립은 옛 원님에서 비롯되었네 / 建置云自舊侯由
옛 원님 노봉 김정 공에게는 남다른 공적 많으니 / 舊侯金公多異績
곳곳을 중수하느라 부지런히 힘을 다했지 / 在在修葺勤度謀
성 동쪽 작은 정자가 국도에 임했으니 / 城東小榭臨官道
전문箋文에 절하고 사면을 베푸는 일 여기서 거행되었네 / 拜箋延赦於焉庥
예전엔 노천에서 거행되어 몹시 더럽더니 / 昔時露設多褻慢
김정 공이 창건하여 그 일이 더욱 아름답다네 / 金公刱之事尤休
이 섬은 본래 탄환처럼 좁은 땅이지만 / 此島本是彈丸地
흥망의 유래는 수천 년을 이어져 왔네 / 興廢由來幾千秋
지난 일은 아득하여 누구에게 물을까 / 往事茫茫憑誰問
산의 구름과 바다 빛이 모두 유유하네 / 山雲海色同悠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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