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어에서 유래한 한국어 단어사전이 나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있다. 10월쯤 되면 꼭 그런 외래어때문에 우리말이 오염되었다고 훈계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
글쎄, 외려 우리말의 어휘와 문법의 가능성이 보다 풍성해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윤치호가 '내가 영어로 일기를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한국어가 다채로워졌느냐 이 말이다.
1909년의 <대한민보>를 보면 지금은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어휘들을 '신래성어新來成語'라고 소개하고 있다.
박물관에 있으면서 늘상 보고 쓰는 '경매'나 '감정' 같은 어휘도 일본에서 온 외래어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 편집자注 ***
필자가 주장하는 요지에 무슨 군더더기가 필요하겠는가? 한글수호운동이 저 시대에 수행한 다양한 역할을 부정할 필요도 없고, 시대맥락에 따라 그때는 그런 운동이 혁명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아가 그런 운동 중에서도 예컨대 법원 판결문 쉽게 쓰기 같은 운동은 여전히 호소력이 있고 나 또한 열렬히 호응한다.
다만, 그때의 그 논리가 현재도 사회 일각에 그대로 통용한다는 것은 문제다.
한국어 세계화를 꿈꾼 사람들한테, 그것을 실현한 주축이 실은 그런 운동들이 매리罵詈한 이른바 한글파괴자였다는 역설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외래어 찌꺼기를 마구잡이로 들여와서 국어의 순수성을 훼손한다 해서 비판받은 K-pop 스타들이 실은 한국어를 세계에 알린 일등 공신이다.
백년 전엔 주시경이 필요했지만, 21세기는 BTS와 블랙핑크를 부른다.
그리 자신 없는가?
한국어? 안 죽는다. 죽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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