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코로나19 보건사태에 유독 개신교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배하는 모습을 연출하거니와 물론 많은 교회가 그에 적극 참여해 온라인 예배 같은 걸로 갈아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말 앋듣는 데로 개신교회만한 데가 없다.
실제 이번 보건사태 확산이 그들이 기여한 공로는 혁혁해서 기성 기독교단에서는 그것이 신천지라는 이단이 주도한 것이지 우리랑은 상관없단 논리로 맞서거니와 신천지가 이단이냐 아니냐와 관계없이 개신교회가 심각한 우려를 사고 있으며 실제 곳곳에서 사고친 흔적이 완연하다
이에 이 문제를 심층으로 한번 우리 공장에서 다루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아니했으니 역시나 이번에도 노익장 이희용 기자가 흔쾌히 나서 주신다.
오는 6웰이면 정년퇴임하는 노땅을 너무 혹사하는 것 아닌가 라는 말도 있겠지만 담당부장으로서 한마디 해두건데 늙은말일수록 꼴냄새는 잘 맡는 법이라
역시 이 무직한 주제를 개신교 특유의 신학 논리와 그 역사상 분열을 다른 종단과 비교하는 수법으로 아주 잘 정리했다고 본다.
3대 종교 특징을 대별하기를 "성당은 직영점, 절은 프랜차이즈, 교회는 자영업"이라 했으니, 이보다 더 확실하고 이해가 쉬운 비유가 있겠는가?
루터가 주도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은 요컨대 원리주의로의 복귀로 정리할 수 있거니와 루터가 반대한 것은 기성 카톨릭체제와 신부의 독점 문제였지 결코 기독신앙 자체의 포기는 아녔다는 점이다.
사제를 통해 예수랑 야회를 접신한다는 그 논리를 붕파함으로써 이젠 누구나 성령을 접신하는 시대가 개막했으니 이 운동은 어째 기성 소승에 반란해 대승이 독립할 때 그것이랑 똑같다.
대승이 등장함으로써 깨달음을 완성한 부처가 누구나 되듯이 루터는 사제의 간섭을 배제해 버리고 신도와 예수를 일렬로 마주 세운다. 모든 신자가 사제 중재 없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이 논리를 저 기사에서는 만인사제론萬人司祭論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루터의 혁명성은 이에서 비롯한다.
한더 이와 같은 개신교 혁명이 원치 않는 분파주의를 낳기도 했으니 예수의 사도라 자처하는 이가 우후죽순으로 많아졌다. 그런 개신교가 탑재한 역사적 태동 원리에다가 한국사회에선 이른바 통일문제 북한문제 사회주의 공산주의 용인 문제와 맞물려 분열이 더 가속화한다.
물론 시대를 거슬러 식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른바 신사참배 문제로 난리를 피거니와 이것이 해방 이후에는 과거사 청산문제를 둘러싸고 한바탕 분열을 부추긴다.
개신교단 중에서도 분열이 유독 심한 데가 장로교라, 이쪽 분열 역사도 일목요연히 잘 정리했다.
암튼 한국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 등장 배경에다가 한국적 사정까지 맞물려 신흥 교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이런 신흥교단이 생길 때마다 기성교단, 특히 그에서 많이 갈라져나간 데서는 이단 혹은 사이비라는 딱지를 붙이지만, 한국사회처럼 종교가 사업으로 흥성한 데가 지구상 역사상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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