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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왜 금강산을 일러 일만이천봉이라 할까? 지적질 대마왕 성호의 지적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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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tiJ2OCH1Bc



내가 어릴 적에 배운 동요 가사에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라는 구절이 있었으니,

어찌하여 권력은 전연 현실성도 없는 이런 노래를 가르쳤는지 모르겠거니와, 금강산 금강산 하지만 갈 일이 있어야지?

물론 훗날 잠깐 남북관계 화해 무드에 힘입어 그런 날이 오기도 했지만, 저런 찔끔 여행으로 무슨 금강산이란 말인가?

그건 그렇고 금강산 봉우리 숫자를 일만이천이라 했을까? 이는 많은 지적이 있듯이 본래 불경에서 보이는 구절을 그대로 따가가 그리 삼았을 뿐이니, 그런갑다, 그래 그렇게 놀아라 하고 지나가면 될 것도 기어이 따지면서

실제는 일만이천봉은 택도 없는 소리니 하는 지적질로 잘난 체 한 조선시대 대표 인물이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라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 일만이천 봉우리를 맞추고자 흔적이 역력하며 또 필법은 박산향로博山香爐의 그것이다. 겸재한테 금강산은 실은 박산博山이었다.



이 뇐네들 심성이 참말로 고약해서 진짜로 일만이천 봉우리인가를 따져서 맞니 안 맞니 하는 소일거리로 삼았으니 그것도 모자라 아예 그걸로 논문까지 써서 떡하니 발표하기도 했다.

아래는 이익이 저런 잡스런 고약한 성정을 일삼으며 아예 거질 분류식 백과사전인 류서類書로 꾸민 《성호사설星湖僿說》 권 제2 천지문天地門에 보이는 대목이라, 아예 제목까지도 일만이천봉一萬二千峯이다.


이가정李稼亭(가정은 이곡李穀의 호)이 지은 장안사長安寺 비문碑文에, “금강산金剛山의 뛰어난 경치는 다만 천하에 이름이 났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불경佛經에도 기록되었으니, 《화엄경華嚴經》에 말한, ‘동북쪽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 있으니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이 1만 2천의 보살로 더불어 항상 《반야경般若經》을 설법說法했다.’ 한 그것이 바로 이곳이다.” 하였으니, 1만 2천이라는 숫자는 곧 보살의 숫자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1만 2천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그대로 인습하기 때문에 변경할 수가 없다.

나도 일찍이 이 산을 구경했는데 봉우리가 비록 많다고는 하지만 어찌 그렇게 많을 수야 있겠는가?

나의 생각으로는, 옛날 사람들은 너무 어리석고 순진하여 1만 2천이라는 글자만을 보고 그저 봉우리의 숫자거니 여기며, 이 비문은 자세히 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하는 말이니 가소로운 일이다.

이 산의 본 이름은 풍악楓嶽인데 중들이 불경의 말을 따다가 고의로 금강이란 이름을 붙였고, 또 불경에 “동해 가운데까지는 8만 유순由旬이 된다.”는 말이 있어서, 하륜河崙이 풍악을 지목한 것이 아님을 변명해 놓았다.

내가 상고해 보건대 《만국전도萬國全圖》에, “지구 둘레가 9만 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으니, 어찌 또 8만 유순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불씨佛氏의 과장하는 말에 불과한 것이니 반드시 증거가 되어 믿을 것이 못 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창순 정소문 홍찬유 (공역) | 1977


一萬二千峰

李稼亭長安寺碑云金剛之勝非獨名天下實載之佛書其華嚴經所說東北海中有金剛山曇無竭菩薩與一萬二千菩薩常說般若者是也一萬二千者即菩薩之數而東人謂有一萬二千峯古今循用不可變矣余曾逰此山峯巒雖多何至此數乎意者舊俗愚蠢只見有一萬二千字而依俙作峯看不勘扵本書悠悠塗說可笑此山本名楓嶽僧徒以佛書故目之以金剛佛書又謂東海中八萬由旬河崙辨其非楓嶽余考萬國全圖大地一周不過九萬里豈復有八萬由旬此不過佛氏誇張之語不必㨿以為信

ⓒ 성호기념관



얼마나 성호가 뻐기는지 눈에 선하다. 그 뻐김은 두 가지로 발현하는데

첫째 금강산과 일만이천이 불경에서 왔지만 그 숫자는 봉우리가 아니라 보살 숫자이며

둘째 내가 가 봤는데 일만이천은 택도 없더라

라는 지적이 그것이라 그러면서 이런 과장왜곡이 불가 특유의 과장법에 지나지 않음을 더구나 만국전도라는 당시로서는 최신 세계지리서를 토대로 설파한다.

저런 어투를 보면 성호라는 뇐네 참 밉상이다.

누가 몰랐는가? 저 어투를 그대로 답습한 이가 다산이다. 이 뇐네도 똑같아서 왜 그리 오랜기간 유배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짐작한다.

잘난 체 하는 꼴이 싫었던 까닭이지 무슨 개떡 같은 이유가 있겠는가?

그 점에서 저들과 내가 차이가 있는 지점이라면 나는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들고나오지만 저들은 남들이 다 아는 얘기를 거창한 발견인양 떠든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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