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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죽이려거든 몰살하라, 뜨거운 물 얼굴에 부어 왜적을 몰살한 고양 정토사 중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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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 제16권 / 잡저雜著

정토사淨土寺의 중이 왜적을 죽임[淨土僧殺賊]

정토사의 승려들이 왜적을 죽인 것은 통쾌한 일이다. 당시에는 왜적이 경성에 들어와 웅거하고는 매일 성 밖에 산발적으로 나와 노략질을 하였다. 정토사는 도성 서쪽 20리에 있었으므로 적의 왕래가 잦아 승려들과 낯이 익어 의심하지 않는 처지가 되었다.

고양 사람 이산휘李山輝가 승려들로 하여금 적을 죽일 계책을 이리이리 하라고 설명해 주었다. 하루는 왜적 4명이 절에 당도하자, 절의 승려들이 기쁘게 나아가 맞이하여 방 안으로 인도하고는 자리를 펴 앉게 하고 서둘러 밥을 지으니, 왜적이 접대가 후하다고 여겨 매우 기뻐하였다.

밥이 다 되자 승려 네 사람이 밥상을 받쳐 들고 엄숙하고 공경한 태도로 올리고는 노승 한 사람이 주석에 마주 앉아 음식을 권하니, 왜적은 의심하지 않고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더운 물을 달라고 하였다. 이때 승려가 이미 펄펄 끓여 놓은 물은 뜨겁기가 불과 같았다.

네 중이 큰 바가지에 가득 담아서 주니까, 왜적이 바리때[鉢]를 받쳐 들고 물을 받으려고 위로 쳐다보는 순간 승려들이 일시에 끓는 물을 그들의 얼굴에 끼얹고, 적들이 모두 방바닥에 엎드리자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죽은 그들을 보니 눈알이 모두 익어 있었다. 시체는 끌어 내어 절 밖에다 매장했다.

그때는 적이 촌락으로 들어와서 동료 가운데 사살자가 생기면 남은 적이 돌아가 보고해서 반드시 대거 출병하여 보복을 자행하였는데, 이날은 4명이 와 모두 죽어 화를 피한 자가 없었기 때문에 드디어 승려들은 무사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권호기 박희창 은정희 조복연 최순희 (공역) | 1977


淨土寺僧人殺賊事。可笑。時賊入據京城。每日散出掠城外。淨土在城西二十里。賊往來旣多。因與寺僧相熟不疑。高陽人李山輝敎寺僧設策殺賊曰。如此如此。一日有四倭到寺。寺僧欣然出迎。引入堂上。布席而坐之。奔走作飯。倭以爲待之厚。甚喜。飯熟。僧四人奉盤。肅恭而進之。老僧一人主席。對坐勸食。倭坦懷不疑。食畢。呼湯水。時僧已熾火沸湯。令極熱如火。四僧以大瓢滿斟以進。倭各持飯鉢。仰視受水。僧一時以湯水急潑其面。賊皆仆地。諸僧以木椎擊殺之。視之目晴皆爛。曳出寺外埋之。時賊入村落。苟有射殺者。餘賊歸報。必大出報復。是日。獨四賊來。而俱死無免者。故遂無事。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0


이 사건은 볼짝없이 임란 중에 있이라 해서 서애가 증언한다. 이 고양 정토사가 지금의 그 정토사인지는 내가 확인하지 못한다.

암튼 저 사건을 계획한 이는 승려가 아니었다. 고양 사람 이산휘李山輝라고만 나오는데, 이 이산휘는 어떤 인연이 있어 저런 일을 모의 획책했는지는 모르겠다. 선조실록을 보면 임피현령臨陂縣令 이산휘李山輝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그 이산휘인지 모르겠다.

죽인 방식이 좀 묘한데, 식사 대접을 하면서 끓는 물을 얼굴에 쏟아부어 정신을 못차리게 한 다음 몽둥이로 쳐서 죽인 것이다. 나아가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가면 보복을 받을 것이 뻔하므로 넷을 한꺼번에 다 죽였다는 점도 이채롭다.

중들이 저런 집단 살상을 저질렀다는 것도 좀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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