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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왜 전통시대 건축은 필연으로 졸속인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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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월대? 웃기는 소리들 좀 그만해라. 졸속건축의 첨단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예산은 년 단위로 움직였다.

전통시대 동아시아 국가재정은 다원 구조였다.

첫째 중앙과 지방이 따로 놀았다.

지자체 혼합이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지방에서 100원을 거두면 50원을 중앙으로 올려보내고 나머지 50원은 지방에서 썼다.

향리는 중앙공무원이 아니라서 이 지자체 수입으로 먹고 살았다. 이것도 정식 봉급을 받았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정해진 봉급 체계가 없어 이런저런 행정수수료 떼먹는 시스템이었다.

중앙부처 공무원은 매달 봉급을 탔다. 돈? 웃기는 소리. 무슨 돈? 현물이었다. 쌀가마니 지고 왔다.

바로 이 특성에서 대지주지만 언제나 대지주는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매양 가난해서 라는 타령 새빨간 거짓이나 현금 동원력이 없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타당한 말이다.

중앙정부 수입은 곧 지출이라 이 재정구조는 이중이었으니 국가재정과 왕실재정이 분리됐다.

규모는? 왕실 재정이 훨씬 컸다. 이른바 내탕금이 바로 왕실재정이다.

일본식으로 말하면 국가재정은 대장성, 왕실재정은 궁내성 관할인 걸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왕이 다 뺏어가고 남은 재정으로 국가를 움직였다.

수원 화성 짓는데 정조가 내탕금을 냈다. 그래서 훌륭한 군주?

웃기는 소리다. 어차피 백성들 고혈을 짜낸 돈이다.

국가재정이 버티지 못하니 할 수 없이 지가 꼬불친 돈 선심 쓰듯 내놓았을 뿐이다.

조선은 농업기반 물물경제라 이걸로 재정을 해결했으니 농사는 년 단위로 움직인다. 그래서 예산도 그리 움직인다.

이것이 요즘은 회겨연도다.

징발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현물 삥뜯기. 이른바 공납이 그것이라 이것이 국가재정 왕실재정 근간이다.

상공업 발달? 개소리다.

둘째 노동력 징발

문제는 노동력 징발과 농사는 직접 관계라는 점.

노동력 징발과 농사는 충돌하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대규모 토목은 봄 파종기 직전에 잠깐 했다.

길어지면 농사에 지장이 있고 반란이 일어난다.

고대 중국의 경우 변형이 있지만 기본에서는 20일을 넘지 않았다.

이 20일 동안 뚝딱뚝딱 운하 만들고 만리장성 쌓고는 해산 고향 앞으로 했다.

이 스무날은 무임금 재능기부였고 입을 거 먹을건 자체 해결해야 했다.

새참? 안줬다.

이 국가재정 시스템 인력동원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이걸 모르니 헛소리가 새벽 꼬기오 소리만큼 시끄럽다.

전통시대 모든 건축은 급조였다.

내가 살 집도 아닌데 일급 주는 것도 아닌데 미쳤다고 내가 목숨 걸어 좋은 집 짓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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