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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HISTORY

요사遼史 야율분노耶律盆奴 호독근胡獨堇 열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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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遼史 권80 열전列傳 제18

 

 

아율분노耶律盆奴는 字가 호독근胡獨堇이라 척은惕隱 날로고涅魯古의 손자다. 경종景宗 시대에 마고부馬古部 상은詳穩이 되어 다스림이 언제나 엄하고 급하니 백성들이 그것을 고통스럽게 여겼다. 담당 부서에서 이런 소문을 보고하자 황제가 조칙을 내리기를 “분노는 한 쪽 지방 일을 맡아 세세한 일까지 따져 물으니 위엄과 신망이 손상당하지 않을까 한다”면서 마군태보馬群太保로 자리를 옮기게 했다.  

통화統和 16년(998)에 몰래 연燕 지방 군대에 복무하는 자로서 직책을 감당하지 못할 자를 살펴 그들을 도태케 했다.

28년(1010), 황제가 고려를 정벌하면서 분노를 선봉으로 삼았다. 동주銅州에 이르러 고려 장수 장조康肇가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우리 군대에 저항하니 군영 하나는 동주 서쪽에서 세 강물이 모이는 곳을 점거한 채 강조가 그곳에 머무르고, 다른 군영은 동주 가까운 곳 산에 진영을 차렸으며, 다른 부대는 동주성에 붙어서 진을 쳤다. 분노가 야울홍고耶律弘古를 거느리고서 세 개 수영水營을 치고는 강조를 사롭으니 이현온李玄蘊 등의 군대는 그 기세만 보고도 무너졌다. 

마침 도착한 대군大軍과 함께 (고려군을 쳐서) 삼만여 급을 베고 개경開京까지 추격하여 그 서쪽 고개에서 적을 깨뜨리니 고려왕高麗王 순詢(현종)은 변방 성이 무너졌다는 소문을 듣고는 도망가버렸다. 

분노는 개경에 들어가서 왕궁을 불태우고는 그 백성들을 위로하니 황상이 그 공을 가상히 여겨 북원대왕遷北院大王으로 삼아 옮겨간 뒤에 훙薨했다.

 

8 耶律盆奴,字胡獨堇,惕隱涅魯古之孫。景宗時,為馬古部詳穩,政尚嚴急,民苦之。有司以聞,詔曰:「盆奴任方面寄,以細故究間,恐損威望,」尋遷馬群太保。
9 統和十六年,隱實燕軍之不任事者,汰之。二十八年,駕征高麗,盆奴為先鋒。至銅州,高麗將康肇分兵為三以抗我軍:一營於州西,據三水之會,肇居其中;一營近州之山;一附城而營。盆奴率耶律弘古擊破三水營,擒肇,李玄蘊等軍望風潰。
10 會大軍至,斬三萬餘級,追至開京,破敵於西嶺。高麗王詢聞邊城不守,遁去。
11 盆奴入開京,焚其王宮,乃撫慰其民人。上嘉其功,遷北院大王,薨。

 

***

이로 보아 야율분노는 부하들을 닥달하는 스타일임을 알 수 있으며, 작은 일까지 다 따지는 쫌팽이 형임을 본다.

이런 보고를 접하고 황제가 새로운 직책으로 준 마군태보馬群太保는 문맥으로 봐도 그렇고, 명칭으로 봐도 꿔다논 보릿자루 같은 한직이었음을 본다. 

이런 그를 고려 정벌군 선봉에 세운 이유는 그 성격, 곧 무대뽀 정신 때문이었다. 명령 하나로 미친 듯 날뛰는 용맹한 장수가 필요했으니, 이런 친구를 앞장세워야지 않겠는가? 결국 총알받이로 쓴 셈인데, 이 총알받이가 요행인지 공을 세워 더 출세하게 된다. 

 

#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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