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끝나더라도 도록은 남는다.’라는 말을 일하면서 몇 번이나 들었다.
이 말 그대로, 학예사에게 도록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요즘은 전시가 끝나도 VR로 전시를 볼 수 있지만 모든 전시가 VR로 기록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전시 이후에도 그 전시가 궁금하다면 도록을 펼쳐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록은 남는다.’는 말은 말 그대로 전시의 전반적인 것을 전시가 끝나도 도록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게 때문인지, 전시만큼 도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학예사들도 있다.
다양한 도록들
도록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유물의 사진을 위주로 싣는 도록이 있는가 하면, 각종 도표와 설명글이 들어간 도록 등등. 그래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유물의 사진이 크게 실리고, 뒷면에 전문가의 글이 실리는 것이다.
전시에 나온 유물들을 상기시키고, 전문가의 글을 통해 전시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도록의 유형은 학예사의, 혹은 박물관의 지향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목적은 해당 전시를 잘 기억(이해)하기 위함에 있다.
미술사를 전공한 나에게는 유물의 사진이 크게 들어간 도록이 익숙했다. 지금처럼 각 기관에서 고화질 이미지를 공유하지 않았을 때만 하더라도, 공부를 하려면 도록을 스캔해야만 했다. 책의 가운데 부분 때문에 제대로 스캔할 수 없을 땐, ‘아 이 도록은 왜 이렇게 만든거야. 오리꼬미(판형보다 더 큰 종이를 써서 접어서 만드는 것)로 만들지.’라고 툴툴거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대부분 고고학과 미술사가 베이스인 곳들이라 도록 역시 그렇게 제작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새롭게 생겨나는 도록의 유형
요즘은 우리 같은 지역사 박물관들도 많이 생겼다. 그러면서 이미지 위주의 도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령 생활사 전시의 경우, ‘다리미’같은 유물을 미술사 도록처럼 크게 디테일하게 다룰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다리미와 관련된 정보들을 함께 다루어 주어야하지 않을까? 이런 지점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도록은 정보를 보다 제공해주는 도록이다. 물론 이것은 각 박물관의 성격마다 다르다. 그래서 이러한 가정은 우리 박물관 같은 지역사 혹은 근현대를 주로 다루는 박물관 도록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선호하는 도록에서 나아가, 내가 생각하는 도록을 말하자면 도록이란 ‘전시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또는 ‘학예사가 전시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런 면에서 내 도록은 정보가 다소 많기도 하고, 전시에 나오지 않은 유물도 들어간다.
한편으로는 한번 전시를 하면 향후 5년 이상은 이 주제로는 전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전시 준비를 통해 얻은 것은 최대한 도록에 넣어주려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늘 듣는 말이 있다.
“선생님. 도록의 한자가 뭔지 아세요? 그림 도 잖아요. 이미지를 많이 넣어주어야 하는 것이에요.”
“도록이 연구서는 아니잖아요. 선생님 도록은 도록 같지 않아요.”
그래도 늘 생각은 다르니까, 나는 이렇게 만들겠다고 내 길을 걷었는데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록을 사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것. 나는 늘 내 기준으로 도록을 만들었는데, 그동안 나는 어쩌면 연구자의 관점에서만 도록을 봐왔을지도 모른다. 전업 연구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학원 시절부터 공부하는 목적으로만 도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소도록과 대도록을 별도로 만들 수 없는 우리의 사정으로는 연구자와 일반 관람객을 다 생각해야하는데, 그동안 나는 후자의 입장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전시에 관심이 있어 도록을 사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도록을 구입까지 해서 책장에 꽂아두는 걸까. 이 부분이 요즘의 나의 관심사이고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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