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골탑은 대략 6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 사립대학이 농부들의 소판돈을 빨아 들여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부정적으로 사용되던 용어다.
하지만, 해방이후 우리나라는 우골탑을 쌓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우리나라는 해방 직후,
제대로 된 대학이 거의 없었다. 반도 유일의 대학인 경성제대는 절반 이상이 일본인 학생이었고,
교육 기회는 조선인의 경우 상급학교로 이어질수록 각종 제한에 직면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조선에서만 교육받아 전문학교로 마치게 되면, 학사학위 없이 디플롬 하나를 받은
고졸 학력, 이것이 실상이었는데, 그 전문학교 졸업생도 조선에는 숫자가 많지 않았다.
해방이후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가장 급선무는,
결국 학사 이상의 대졸자를 빨리 양산해 내야 하는 것이었다.
미군정시기에 이미, 구제 전문학교는 거의 모두 대학으로 전환되어 4년제 학사를 키워내도록 개편되었다.
한국의 경우, 우선 초-중-고 교육 자체가 매우 부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가의 재원은 이러한 기초교육 쪽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다. 일단 고졸생을 만들어 내야 대학생이 늘 것 아니겠는가?
신생 독립국인 한국이 가진 돈으로는 대학 교육까지 재원을 투자하여 이를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한국은 대학교육부터는 국공립대 대신 "사립대학"을 뼈대로 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잡아 갔는데,
대학을 1950년대에 무더기로 증설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립대학"이 생겨났다.
해방 이후 한국경제에서 "사립대학"이란 빠른 속도로 대학 졸업생을 키워내야 하는 국가적 필요에서 양산된 셈이다.
사립대학이 그 운영과정에서 많은 착오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국가 교육에 이바지한 공헌 역시 적지 않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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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골탑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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