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우리 집 추석 차례상에 오른 제수 중에 종래와 다른 대목 두 가지 정도가 있으니 하나는 샤인머스켓이요 다른 하나는 멜론이라
이걸 차리며 이건 누구 작품이냐 물으니 집사람 소행이라, 이참에 저 둘을 새로 얹어봤단다.
어른들 살아계실 때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테지만, 시대가 변하니 제수음식도 변하기 마련이라, 그래 시대가 샤인머스켓과 멜론을 양산하는 시대라, 새로 올려서 안 될 것도 없다.
북어도 본래 우리 집에서는 머리를 반대편으로 놓아야 하지만, 나도 까먹고 저리 놨더니마 엄마가 들어와서 보고는 잘못 놨다며 방향을 바꾼다.
또 제수 진설하는 문제로 얼마나 시끄러운가? 맨 앞줄에다가 과일을 놓고 그 뒤로 또 적을 놓느니 마느니 해서 오죽이나 시끄러운가? 또 그 절차는 얼마나 복잡한지, 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으면 어른들이 맨날맨날 그 순서두고 싸워댔다.
결국 그럴 때마다 언제나 정답은 정성!!! 이 한 마디였으니, 절차가 어떻건 진설방법이 어떻건 중요한 건 정성이라는 아주 편한 구호 아래 이것저것 다 생략하고, 결국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그 편한 말마따나, 절도 두 번 했다가 한번했다가 하고는 끝낸다.
우리는 흔히 원형을 이야기한다. 나는 언제나 그 원형을 의심하며, 그것을 부정한다. 원형이란 없으며, 그 원형이란 것도 누층한 현재의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저 제수 음식 진설방법만 해도 집안마다 다르고, 그 집안에서도 언제 어떻게 현재로 정착했는지 물으면 아무도 모른다.
이에서 우리는 원형은 실상은 그 어디에서도 존재한 적 없는 허상이며, 임시방편임을 절감한다. 간단히 말해 원형은 없다. 중요한 것은 정성이요 마음이다! 제사란 무엇인가? 조상의 추모이며, 그를 통한 오늘날 내가 있게 된 내력에 대한 반추다.
이것이 바로 제사의 본질이다. 이 본질을 바탕으로 삼아 그 시대 유행을 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면면히 흐르는 본질을 핵심가치라 하며, 이 면면하는 정신이 바로 전형典形이다. 바나나를 쓰건 샤인머스켓을 쓰건, 그것이 원형의 훼손일 수는 없다.
툭하면 종묘제례악이 원형을 훼손했느니 마느니 하는 주장이 요즘은 좀 들어가기는 했지만, 내가 이 업계에 몸담을 때만 해도 그걸로 장사하는 인간 천지였다. 알고 보면 의도가 순수치 아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 그렇다면 우리네 문화재정책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당연히 전형이지 않겠는가?
없는 원형이라는 허상을 찾아 매양 원형을 훼손했느니 하는 타령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굉음처럼 울려퍼진다. 그 원형을 찾겠다면서 그 원형이야말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순수라고 부르짖으며, 그에 덧씌워진 것들은 불순이며 혹이며 암덩어리라 하면서 걷어내는 일이 무자비하게 단행된다.
문화재호보헙 제3조(문화재보호의 기본원칙)에 당장 이르기를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
고 하거니와, 원형이 없는데 무슨 원형 타령이란 말인가? 그에 견주어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약칭 무형문화재법 )을 보면 이 법률이 지향하는 기본 원칙을 제3조(기본원칙)에 제시하면서 이르기를
무형문화재의 보전 및 진흥은 전형 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하며,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라고 해서 원형이라는 말이 없다. 없앴다! 원형이라는 말은 불가능하기에 없앴다.
없애야 한다. 원형이라는 괴물을
추방해야 한다. 원형이라는 허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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