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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yupedia] Beolcho (벌초)
코로나 핑계로 이번엔 아버지 산소 소분이 늦었다. 추석 전날 예초기 둘러매고는 동생이랑 손자, 손녀 사위 대동하고 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들놈이 처음으로 불참했다. 저가 할 일이 있겠냐만 그래도 모름지기 소분 때는 데리고 갔다.
할아버지 얼굴이라 해야 사진밖에 본 일이 없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태어났으니 말이다. 그래도 꼭 데리고 가던 놈이 군복무 핑계로 건너뛰니 만감이 교차하거니와 내년에도 아마 그럴 것이다.
놉해서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몸이 허락하는 한 내 손으로 아버지 이발은 해드리려 한다. 장성 땅 유서깊은 가문 어느 자식은 년중 너댓번이나 소분을 한다지만 우리 집이야 그럴 만한 내력도 없는 역적의 후손 지손이라, 또 아버지가 작은아버지 양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내가 모셔야 하는 조상이라곤 조부모와 아버지, 그리고 나한테는 큰어머니인 선비가 있을 뿐이니
하도 산이 밀림으로 변하는 통에 이제 조부모 산소와 큰어머니 산소는 그 밀림에 집어삼킴을 당했으니 통탄해도 소용이 없다.
조금 더 훗날엔 다 이장해서 가족묘로 꾸며 볼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그때는 화장이 대세일 테니 아버지 산소 근처에다 작은 가족 납골당 하나, 혹은 초소형 봉분 단지로 대체할까 생각해 본다.
것도 쥐뿔이 있어야 가능할 테니 아무리 꼰대라 해도 내가 비롯한 뿌리 하나만큼은 부둥켜 안고 가려 한다.
혹 훗날 아들놈이 이 글을 볼 날이 있을까 싶어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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