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시대를 거치고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남은 재산 다 말아 먹은
말 그대로 국제거지 신세였던 한국이 겪은 가장 큰 문제는 근대화를 시작하려해도 종자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당장 먹고 살것도 없어 밀가루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무슨 돈이 있겠는가.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과정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일본이 근대화를 시작한 메이지유신 이후의 19세기 후반은
일본이 서구를 따라잡기에 힘이 부치기는 했지만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
일본은 한푼이라도 정부에서 아껴 필요한 부분을 하고, 별의 별 짓을 다 했지만 그래도 만년 적자에
가장 중요한 산업혁명은 19세기 후반까지도 시작 못하고 있었다.
돈이 있어야 시작할 것 아닌가?
이 고민을 일거에 해결한 것이 바로 청일전쟁이었다.
일본이 20세기 초반 산업혁명에 비로소 진입하기 시작한 것은 청일전쟁의 배상금
그리고 1차대전 후 부흥기에 벌어들인 막대한 무역 흑자였다.
이 두 가지로 일본은 근대화 이후 축적되어왔던 적자를 일거에 해결하고
명실상부한 제국주의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엇다.
한국은 45년 독립 후에
이른바 국제거지로서 돈 나올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처럼 청일전쟁 배상금을 얻을 수 있는 제국주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그래서 한푼이라도 그 종잣돈을 만들겠다고 한 시도가,
바로 대일배상금, 월남전참전, 중동 건설, 그리고 독일광부다.
대일배상금, 월남전, 중동. 물론 욕하기는 쉬운데
그럼 그때 이 방법 외에 종자돈을 어떻게 조달했어야 하는가, 그 대안을 내놔야 하는게 아니겠는가?
소위 자력갱생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것은 휴전선 이북에서 생생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중동건설, 독일광부보다 대일배상금, 월남전 문제는 유독 좌우간 의견차가 첨예한 사안인데,
이 사안에 대해서는 당시 한국의 선택이 윤리적으로 욕을 먹을 문제가 있다면 먹더라도
이 두 가지가 없었으면 한국의 근대화는 시작도 못했고 진행도 못했다는 것이 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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