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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긴장을 계속하는 나당관계

by taeshik.kim 201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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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자기 다리를 밟으면 개가 주인을 무는 법입니다."


다시금 찬찬히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을 읽다가 마주한 대목이다. 백제를 멸한 당이 이번엔 함께 백제를 정벌한 신라를 치려하자, 이를 감지한 신라 조정에서 대처 방법을 두고 격론이 벌어진다. 이 와중에 군사적 대응에는 미온적인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겨냥해 김유신이 한 말이다. 이 대목이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中)에는 다음과 같이 보인다. 


당이 백제를 멸하고는 사비(泗沘) 땅에 진영을 치고 신라 침공을 은밀히 도모했다. 우리 왕이 이를 알고는 여러 신하를 불러 대책을 물으니, 다미공(多美公)이 나와 말하기를 “우리나라 사람을 의복을 입혀 백제인으로 꾸며 역적 행위를 하게 하면 당군이 반드시 이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 틈을 타 싸움을 벌이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고 했다. 유신이 말하기를 “이 의견이 취할 만하니 따르시길 바랍니다”고 했다. 왕이 말하기를 “당군이 우리를 위해 적을 없애주었는데 도리어 그들과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는가?”라고 하니, 유신이 말하기를 “개가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자기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겠습니까? 대왕께서 이를 허락하소서”라고 했다. 당이 우리가 대비하고 있음을 염탐해 알아내고는 백제왕과 신하 93명, 군사 2만 명을 사로잡아 9월 3일, 사비에서 배를 타고 돌아가며 낭장(郞將) 유인원(劉仁願) 등을 남겨 지키게 했다. 정방이 귀국해서는 천자에게 포로를 바치니 천자가 정방을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찌 곧바로 신라를 치지 않았는가?”라고 하니 정방이 말했다. “신라는 왕이 어질어 백성을 사랑하고, 신하들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며,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부형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비록 나라는 작지만 일을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바로 앞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당과 신라가 힘을 합쳐 공격하여 백제를 멸했다. 이 싸움에서 유신의 공적이 많았다. 당 황제가 이를 듣고는 사신을 보내 그를 치하했다. 장군 정방이 유신ㆍ인문ㆍ양도(良圖) 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재량껏 일을 처리하라는 황제 명을 받았소. 지금 싸워 얻은 백제 땅을 공들에게 식읍으로 나누어 주어 여러 분 공에 보답코자 하는데 어떻겠소?”라고 하니 유신이 대답했다. “대장군이 귀국 군사를 거느리고 오셔서 우리 임금 소망에 부응하고 우리나라 원수를 갚아주니, 우리 임금과 온 나라 신하와 백성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한데 유독 우리만이 땅을 받아 자신을 이롭게 한다면 이것이 어찌 의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러고는 끝내 받지 않았다. 


김유신은 당의 야욕이 무엇인지 꿰뚫고 있었고, 그에 대한 강온의 대처 방법을 너무나 잘 알았다. 아무리 당이라고 해도 칼을 뺄 때는 과감히 뽑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개인 신라가 때로는 주인인 당을 향해 군사 행동을 서슴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데 신라가 구상한 대처 방식이 실로 기묘하다. 당군 화력을 분산시키자는 전략을 낸 것이다. 그 일환으로 신라인을 백제인으로 가장해, 반란을 일으키자고 한다. 그리 되면 당군은 그들을 진압하고자 당연히 군사력을 발동할 것이고, 그 틈을 빌려 신라군이 당군 중심을 치자는 것이었다. 중심을 무너뜨린 다음, 토벌에 나간 나머지 당군을 격멸하자는 것이다. 이런 제안을 한 다미는 아무리 봐도, 김유신 책사 같은 느낌을 준다.   


당과 신라의 복잡 미묘한 관계는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간단없이 이어진다. 백제 멸망 직전, 7월 10일 백제 서울 사비성(泗沘城)에서 만나기로 한 신라군이 하루 늦게 도착했다. 당군 총사령관 소정방은 노발대발했다. 왜 약속기일을 어겼느냐? 그러면서 신라군 감독관인 문영을 책임을 물어 처형하려 했다. 이때 분노한 김유신은 칼을 빼고는 소정방을 향해 백제를 치지 전에 당군과 일전을 겨루겠다고 했다. 


서로 믿지 못한 양국 관계는 결국 백제 고구려가 무너지자 폭발하고 만다. 그것이 이른바 나당전쟁이었다. 그 기나긴 전쟁에서 신라는 마침내 당군을 한반도에서 완전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이 성공이 당에 준 충격을 적지 않았다. 혹자는 당과 토번 전쟁을 거덜먹이면서, 당군이 패퇴하거나, 군사를 한반도에서 뺄 수 없었다고 주장하나, 그래서 당군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나,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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