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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교 선생>
흔히 유배지에서 예술을 꽃피운 사람 하면 추사를 들먹이곤 한다.
하지만 그보다 예전에 그보다 더 오래 유배를 살았고 또 유배지에서 자신의 예술을 완성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원교 이광사(1705-1777)다.
붕당정치에 휘말려 함경도 부령으로, 다시 전라도 신지도로 옮겨가며 끝내 거기서 죽어야했던 원교지만, 강화학파의 중진으로 학문이 뛰어난 건 물론이고 특히 꼬장꼬장하면서도 유연함이 있는(모순되지만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글씨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가 죽자 부령 선비들이 신지도까지 내려와 장사를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학덕이 높았고
또 호남의 절이란 절에는 거의 다 편액글씨를 써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의 모습은 지금도 초상화로 남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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