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다. 언제나 그렇듯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한국고전번역원 들어가서 이런저런 문집 뒤져가며 읽는데 어쩌다가 《불우헌집不憂軒集》이 걸려들어 그래 불우헌이라면 정읍 땅 정극인丁克仁(1401~1481)이요, 정극인이라면 상춘곡嘗春曲인지 뭔지 하는 가사가 유명하다 해서 고교시절 열라 외운 기억이 나거니와
덧붙여 이 정극인과 관련하는 문화유산으로 정읍땅 무성서원이라는 데가 있어 연전에 이곳을 돌 적에 그 주변에 그의 묘소가 있어 들린 적 있거니와, 이 문집은 이전에 이미 훑은 적이 있지만, 새삼스럽게 이거나 한번 보자 해서 독파를 시작했는데, 당장 그 첫머리에 그 불우헌집 첫번째 서문 작성자로 황윤석黃胤錫(1729~1791)이 등장하는지라
어랏? 이재頤齋가 불우헌집 서문을 썼는가? 기억이 도통 나지 아니하고 아리까리해서 죽죽 읽어내려가는데 그 서문을 막음하기를
명明나라 대통력大統曆을 사용한 나머지의 세 번째 을사년(1785, 정조9) 11월 동짓날 기성箕星 1도度 44분分에 전前 행 세손익찬世孫翊贊 월송越松 황윤석黃胤錫이 경건히 오동吳東 산뢰실山雷室에서 쓰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홍영 (역) | 1998)
하는지라, 어랏! 예서도 이재가 또라이 정신 유감없이 드러낸다 했으니 저런 시간 표시를 하는 조선시대 사람을 본 적이 없던 까닭이라, 저런 옮김이 하도 수상쩍어 혹 오역이 아닌가 싶어 그 원문을 대조하니 아래라
大統餘分三乙巳十一月日南至。箕一度四十四分。前行世孫翊贊越松黃胤錫。敬書于吳東山雷室中。(ⓒ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南至가 곧 冬至라, 아무튼 관건은 箕一度四十四分 이라는 대목이 되겠다 싶었으니, 대체 이건 무슨 개뼉다귀란 말인가 싶다가도 왜 하필 이재는 시간을 저리 표시했을까도 의아했으니, 아무튼 이 대목에서도 이재가 또라이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겠다. 하긴 연도를 표시한 大統餘分三이라는 표현도 이채롭기는 마찬가지다.
아무튼 箕一度四十四分이란 그 모양이 28수宿 별자리 중에서도 곡식를 까부는 도구인 키[箕]를 닮았다 해서 기성箕星이라 일컫는 별자리가 1도44분에 있는 시간이라는 뜻이니, 그렇다면 대체 이 시각이 언제냐가 문제가 되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내가 뾰족한 방법은 없지, 그렇다고 물어봐도 꿔다논 보릿자루이기는 마찬가지였을 성 싶은 장성 독거노인 호철 기씨한테 보내면서 이게 대체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라고 무슨 용가리 똥뼈 굽는 재주 있다고 저걸 알겠는가?
대신 이걸 알아낼 만한 사람이 있으니, 한국천문연구원 안상현 박사라는 사람이라, 그가 안 박사한테 箕一度四十四分이 어느 시각에 해당하는지를 물은 모양이라, 그리하여 얼마 안 있어 기씨를 통해 안 박사 대답이 왔는데
1785년 12월 21일 11:59이 동지 시각이고요, 기성 1도 44분은 10시 44분경입니다.
라는 것이라는데, 암튼 어찌어찌해서 저 서문을 쓰고 그 마침표를 찍은 시점이 이렇다 한다.
이재 황윤석은 그의 호를 딴 《이재난고頤齋亂藁》라는 수퍼울트라초기이 방대 일기 저자로 유명한 사람이라, 편의상 이걸 일기라 하지만, 일기라기보다는 잡탕 글 묶음이라, 일기도 있고, 논설도 있고 아무튼 닐리리 짬뽕 원고뭉치라, 그래서 저 자신도 산만하다 생각했음인지 저걸 난고亂藁라 이름했거니와, 이게 출판이 안 되어서 그렇지, 출판이 되었더라면 좀 더 완정한 상태로 정리되었을 것이다.
저 《이재난고頤齋亂藁》를 보면, 조선시대에 이런 또라이가 있나 할 성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사대부 모습을 보이거니와, 그런 특성이 저 서문 날짜 표시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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