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쇠돌 엄마 기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2. 21.
반응형

by 여송은

 

“쇠돌 엄마 기슈?”

“쇠돌 엄마 말인가? 왜 지금 막 나갔지. 곧 온댔으니 안방에 좀 들어가 기다렸으면...”

“이 비에 어딜 갔에유?”

“지금 요 밖에 좀 나갔지. 그러나 곧 올 걸....”

“있는 줄 알고 왔는디?”

“그럼 요 담에 오겠어유, 안녕히 계시유.”

“아닐쎄, 좀 기다리게, 여보게, 여보게 이봐”

“왜 이러서유, 이거 노세유”

“아니 잠깐만”

 

......

 

“너 열 아홉이지?”

“니에”

“그래, 요새도 서방에게 주리경을 치느냐?”

 

이런 집요한 수작을 거쳐 오늘 몸을 주고 돈을 꾸어 오리라 작심한 춘호 처는 마침내 쇠돌엄마 안방에 들어 앉아 大事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벗겨 놓은 춘호 처를 내려 보며 쉰살 이 주사가 하는 말은 분위기 깬다.

 

“얘, 이 살의 때꼽 좀 봐라. 그래 물이 흔한데 이것 좀 못 씬는단 말이냐?”

 

배꼽에 낀 때도 이 호색한의 욕망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춘호 처는 돈 2원을 내일 빌려 준다는 이 주사의 약속을 받고는 다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몸 대주고 돌아온 춘호 처를 기다린 건 어디갔다 이제야 돌아오느냐, 돈은 어떻게 되었느냐는 다그침과 함께 구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직성이 못 풀리어 남편이 다시 매를 손에 잡으려 하니 아내는 질겁을 하여 살려 달라고 두 손을 빌며 개신개신 입을 열었다. 

 

“낼 되유....낼. 돈 낼 되유”

 

잠자리에 누운 춘호와 춘호 처. 두 부부는 이 지긋지긋한 농촌 생활을 청산하여 서울에 올라갈 수 있다는 환상으로 밤을 지샌다. 서울에는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으나 들은 풍월은 많은 춘호는 아내에게 서울 생활을 이렇게 교육한다.

 

“첫째, 사투리에 대한 주의부터 시작되었다. 농민이 서울 사람에게 ‘꼬라리’라는 별명으로 감잡히는 그 이유는 무엇보다 사투리에 있을지니 사투리는 쓰지 말며, ‘합세’를 ‘하십니까’로, ‘하게유’를 ‘하오’로 고치되 말끝을 들지 말지라, 또 거리에서 어릿어릿하는 것은 내가 시골뜨기요 하는 얼뜬 짓이니 갈 길은 재게 가고 볼 눈은 또릿또릿이 볼지라-하는 것들이었다. 아내는 그 끔찍한 설교를 귀담아 들으며 모기소리로 ‘네,네’'를 하였다.”

 

다음날 아침, 이 주사를 찾아 나서는 아내를 위해 춘호는 단장을 시킨다.

 

“아내가 꼼지락거리는 것이 보기에 퍽이나 갑갑하였다. 남편은 아내 손에서 얼레빗을 쑥 뽑아 들고는 시원스레 쭉쭉 내려빗긴다. 다 빗긴 뒤, 옆에 놓인 밥사발의 물을 손바닥에 연신 칠해 가며 머리에다가 번지르하게 발라 놓았다. 그래 놓고 위서부터 머리칼을 재워가며 맵시 있게 쪽을 딱 찔러 주더니 오늘 아침에 한사코 공을 들여 삼아 놓은 짚신을 아내의 발에 신기고 주먹으로 자근자근 골을 내주었다.

 

‘인제 가봐!’

 

하다가,

 

‘바루 곧 와, 응?’

 

하고 남편은 그 2원을 고히 받고자 손색없도록, 실패 없도록 아내를 모양내 보냈다.” 

 

(김유정 <소나기>)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