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유물에 없는 역사 정보, 사람 뼈와 미라에 남아 있죠"
박상현 / 2022-02-06 14:18:54
신동훈 교수·인골 연구자들 "맨바닥서 출발해 이제야 연구방법 확립"
법률 개정으로 인골도 문화재 인정…"인간 존엄성 잊지 말아야"
이른바 똘기로 넘치는 연구자를 가끔 만나는데, 개중 한 사람이 이 기사 주인공 신동훈 교수다. 서울대 의대 현직 교수이며, 비록 장롱면허라 놀리기는 하지만, 엄연히 의사면허증이 있다. 동숭동 의대 연구실 비름빡에는 어엿이 의사면허증이 걸려 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안철수랑 비슷하다 놀리곤 한다. 안철수 역시 의사면허증이 있는 사람이지만 임상과 담을 쌓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가 의사한테 요구하는 고유한 직능을 수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해부학 수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고인골 혹은 고병리 전문연구자로 꼽히며, 그 분야 명성은 국내에서 통용하는 신동훈이라는 무게보다 국제적으로 통용하는 무게감이 상당해서, 해당 분야 업계 사람으로 닥터 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그는 저 분야 국제 거물이다.
가깝게는 이 블로그 외부 필진 중 한 명이다.
서울대 의대교수인 그가 어쩌다가 고병리학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그 자세한 내력은 모른다. 다만 내가 하나 기억하는 것은 대략 20년이 넘은 그 시절, 우리가 알게 될 적에 그가 고고학 판에 모습을 들이밀기 시작했고, 그때 명함 열심이 고고학계에 돌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무엇을 하고자 했을까? 타개 아니었겠는가? 무엇인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픈 열망 아니었겠는가? 마침 그는 열성적인 역사애호가라, 그 무렵 역사21이라는 역사동호회 맹렬한 필자였고, 그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그가 어느날 애호가가 아닌 이 분야 전업연구자를 선언하고 나섰으니, 그리하여 그가 기여할 곳으로 당시에는 의학계에서는 거의 관심이 없던 조선시대 미라 연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에 착근하는 과정은 녹록치 아니했다. 그 자신 그때 한 말을 기억하면 발굴현장 돌아다니며 제발 미라 나오면 연락 좀 달라고 명함 돌린 초창기 5년 동안은 전연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명함 돌리다가 한번 들어오니 두번 들어오고, 두번 들어오니 나중에는 으레 미라하면 그에게로 가지 않았나 한다.
내가 이 과정을 조금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그렇게 열심히 명함 돌리고 다닐 적에 발굴단과 다리를 놔준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나인 까닭이다.
아무튼 그가 선택한 미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했다. 저 기사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조선시대 미라는 내장에다 뇌까지 모조리 빼내고 건어물 상태로 만들어버린 이집트 미라와는 뚜렷이 구별되어 그 분석에서 얻는 정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했다. 시신을 손대지 않은 자연상태로 미라가 되었기에 그 내장물 분석을 통해서는 기생충을 검출하고, 그 기생충 검사를 통해 당시 식생활 일면을 밝혀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어떤 기생충이 나왔는데 그 기생충은 주로 민물고기를 날 것으로 먹어 생기는 것이니, 당시에는 민물회를 즐겼다는 이런 식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고병리학의 발판을 놨다고 본다. 기생충만이 아니라 고병리 전반에 대한 분석은 기존 정통역사학 혹은 고고학이 넘보기 힘든 영역을 개척했으니, 이런 과정들에서 조선시대에는 낙마사고가 지금의 교통사고 그것과 엇비슷한 중대사고라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조선시대 미라를 통해 밝혀낸 성과들은 속속 국제학계에 보고됐다. 그들로서도 건어물 이집트 미라만 보다가 이런 생생한 미라가 밝혀주는 성과들에 관심을 클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속속 투고하는 논문마다 채택되는 행운까지 겹쳤다. 저런 연구는 으레 그렇듯이 영어로 국제저널에 발표되니, 이는 종래의 한국 역사학이나 고고학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성과였다.
내가 매양 그런 말을 하지만 한국고고학도 중에 국제학계에 명성을 구축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국제감각도 없을 뿐더러, 영어로 논문을 써서 국제 저널에 발표할 생각도 하지 못하며, 무엇보다 그것이 다루는 주제는 전연 국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철저히 국내용인 까닭이다.
그런 반면 정통 고고학도나 역사학도 출신이 아닌 그가 고병리학으로 혁혁한 성과를 냈으니, 이는 분명 한국역사학이나 고고학계에도 던지는 의문 혹은 과제가 적지 않다고 본다. 그만큼 한국역사학과 한국고고학 세계화는 시급하다. 제발 국내서 깔짝깔짝대지 말고 국제무대로 나가야 한다.
마침 그가 편집책임자로 간여한 묵직한 미라 영어 단행본이 나오고, 그에 더해 국내에서도 인골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마련됐으니, 이를 기화로 저이를 인터뷰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우리공장 문화부 문화재담당 박상현 기자한테 개진했으니, 이후 어찌 진행되었는지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저 기사가 났다.
인터뷰 하려면 혼차서 하지, 제자들 잔뜩 부른 모양이다. 저 의도를 내가 모르겠는가? 세 과시겠는가? 내가 아는 신동훈은 그런 거 모르는 사람이다. 제자들 키워준다 저랬을 것이다. 저에 동반한 오창석 교수만 해도, 신 교수한테서 미라 연구를 몽땅 물려받았으니 말이다.
그와 더불어 내가 같이해야 할 일도 있다. 저이나 나나 이젠 현직에선 황혼으로 접어드는 시점이다. 의기투합한 한 가지 사업은 같이 이뤄놓고 물러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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