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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이규보는 언제 이름을 바꿨을까

by 버블티짱 2024.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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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집』(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판형으로 보아 분사대장도감에서 새긴 바로 그 판본이 아닐까 싶다. 현재 통용되는 조선 후기 목판본과 철저한 교감이 필요하다. 팔만대장경과 달리 가운데 판심版心이 있어서, 권자본이 아니라 접어서 책장을 만들게끔 했음은 분명해보인다. 다만 실로 엮는 장정이었을까 풀로 겉표지에 붙이는 장정이었을까는 고민해보아야 하겠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라는 인물을 몇 년째 파고들었다. 그런데 무심코 넘겼지만 생각보다 중요할 것 같은 사실 하나를 빠뜨려서, 여기 정리해두고자 한다. 바로 ‘이규보李奎報’라는 그의 이름에 관해서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이인저李仁氐’였다. 이십팔수二十八宿의 세 번째 ‘저성氐星’에서 글자를 딴 것 같다.

그렇게 22년을 살다가 1189년(명종 19) 이십팔수의 열다섯 번째 ‘규성奎星’에서 글자를 따 ‘규보奎報’로 이름을 바꾼다.

그런데 그가 이름을 바꾼 시점을 두고 『동국이상국집』과 『고려사』 의 기록이 엇갈린다.
 
기유년(1189) 사마시(司馬試, 국자감시)에 나아가려고 했을 때, 꿈에 어떤 촌백성인 듯한 노인들이 모두 검은 베옷을 입고 마루 위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옆 사람이 이르기를 “이들은 이십팔수일세”라고 하였다. 공은 깜짝 놀라 황송한 마음으로 두 번 절하고, 올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가리키면서, “저이가 바로 규성이니 알 것일세.”라고 하므로 공은 즉시 그에게 나아가 물었으나 그 대답을 미처 듣기 전에 잠에서 깨었다.

그 꿈을 끝맺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겼더니 조금 지나 다시 꿈을 꾸었는데, 그 사람이 찾아와 이르기를, “그대는 꼭 장원壯元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이는 천기天機인 만큼 다만 누설하지 말게나.”라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응시하였는데 과연 1등으로 급제하였다.

己酉歲 將赴司馬試 夢有人類村甿 皆着緇布衣 群飮堂上者 旁人曰 此二十八宿也 公驚悚再拜 問今年試席捷否 有一人指一人曰 彼奎星乃知之 公卽就問 未及聞其言而寤 恨未終其夢 俄復夢 其人來報曰 子必占狀元 勿慮也 此天機 但莫洩耳 因改今名赴試 果中第一

- 『동국이상국집』 연보 중에서


감시(監試, 국자감시)에 응시하였는데 꿈에 규성이 나타나 성적이 으뜸에 오를 것임을 알려주었으니, 과연 1등으로 급제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其赴監試也 夢有奎星報以居魁 果中第一 因改今名

- 『고려사』 이규보 열전 중에서

『동국이상국집』 연보에서는 1) 꿈을 꾼 뒤 2) 이름을 고치고 3) 국자감시를 치러 4) 합격한 것으로,

『고려사』 열전에서는 1) 꿈을 꾼 뒤 2) 국자감시를 치르고 3) 합격하여 4) 이름을 고친 것으로 나타난다. 

이중 어느 쪽이 사실에 가까울까?


우선 『동국이상국집』 연보 쪽이 『고려사』 열전보다 앞선, 이규보 당대의 기록이다. 

또한 『동국이상국집』 연보 쪽의 내용이 훨씬 상세하다. 이는 같은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이규보의 묘지명을 보아도 교차 검증된다.

아니, 연보가 묘지명의 문장을 끌어왔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공이 사마시에 응시하려 할 때 꿈에서 잘 다듬이질된 검은 베옷을 입은 사람들이 당상堂上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보았는데, 곁에 있던 사람이 말하기를 “이들은 이십팔수일세.”라고 하였다.

공이 깜짝 놀라 황송한 마음으로 두 번 절하고, 올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이가 바로 규성이니, 마땅히 그에게 가서 물어보시오.”라고 하였다.

공이 가서 물어보았으나 그 말을 듣지 못하고 잠에서 깼다.

잠시 후 다시 꿈을 꾸자 다시 한 사람이 와서 알려주기를, “그대는 분명 장원[魁頭]을 차지할 것이나, 이는 천기인 만큼 다만 누설하지 말게나.”라고 하였다.

〈공의〉 예전 이름은 인저였으나 〈이 일로〉 인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응시하였는데 과연 1등으로 급제하였다.

이는 신령한 별[靈曜]이 뛰어난 가르침[名敎]으로 공을 도와준 것이다.

公之欲赴司馬試 夢見着碪練緇布衣人 群飮堂上 傍人曰 此二十八宿也 公驚悚再拜 問今年試席捷否 有一人指一人曰 彼乃奎星 宜就問之 公就問 未聞其言而寤 俄復夢 且一人來報 子必占魁頭 此天機 但勿泄耳 前名仁氐 因改今名赴試 果中第一 此靈曜之攝公於名敎出也

- 이수(李需, ?~?), <이규보 묘지명> 중에서


하지만 이 기록에는 모순이 있다. (이규보가 그런 꿈을 실제로 꾸었는지는 둘째치고) 규성이 일부러 다시 현몽하면서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름을 ‘규성이 알려주셨네’라고 고치고 시험을 본다면 동네방네 떠드는 격 아닌가?

또 그렇게 고치고서 낙방했다면 ‘이인저’ 아닌 ‘이규보’는 도대체 뭐라고 변명을 해야 했을까?

상식적으로는 『고려사』 열전 쪽이 납득하기 쉽다.

“果中第一”, “因改今名”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분명 『고려사』 열전의 찬자撰者는 『동국이상국집』을 보았고 이를 인용했다.

그런데도 『고려사』 열전 찬자가 이규보 개명의 순서를 굳이 바꾼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무작정 ‘술이부작述而不作’을 한 게 아니라 나름대로 사료비판을 한 셈이다.

글쎄, 조금 더 나아간다면 이는 고려 중기와 조선 초기 지배층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옛 기록을 살펴볼 때 주의할 점 중 하나이다.

뭐 그런 게 중요하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은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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