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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이규보 글씨가 아닐까 하는 글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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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많이 백운거사 이야기를 했으면서도, 정작 이규보가 붓을 휘둘러 썼을 글씨가 어땠는지 본 적이 없었다.

한데 몇 달 전 (완전히는 아니어도) 그 궁금증을 풀 만한 자료를 보았다.

일제강점기 출판인이자 서점 경영인 심재 백두용(1872~1935)이 편찬한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 권1에 실린 우리 이규보 선생님의 (작품이라고 전하는) 글씨다.

심재 당년인 1920년대만 하더라도 이 글씨가 (임모본으로라도) 세상에 전해졌던 모양인데, 실제 글씨는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에 몸서리치다가도, 이렇게 목판본으로나마 남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이것뿐만 아니라 고려~조선 초기 인물의 진적眞跡을 찾는 사람들은 이 <해동역대명가필보>를 뒤적여 찾는 경우가 많다 한다.

그런데 그 근거가 무엇일지 아리송한 것이 적지 않아 혼란스러울 때도 드물지 않다고. 심재 선생이 어디서 구하셨든 사진을 찍으셨든 윤곽을 베꼈든 해서 이렇게 목판으로 옮긴 것일텐데, 그 원본은 어디로 갔을까.

백운거사의 친필인지 설령 분명치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면모를 추정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자료의 가치는 제법 무겁다.

행초行草로 상당히 경쾌하게, 어디 하나 막힌 데 없이 술술 써내려간 글씨다.

주필走筆에 능했다는 이규보의 명성을 증언하는 듯하다.

흰 백자의 머리를 크게 쓴 걸 보면 약간의 과시욕도 있어보인다.

그런데 그렇다고 획이 쭉쭉 뻗지는 않고 줄을 잘 맞춘 걸 보면 주변을 많이 신경쓰는 스타일이었던가.

적은 시도 호방한 듯 하면서 섬세하게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 과연 이규보답다 싶은데, <동국이상국집>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젊어서 천마산에 은거하던 때 작품이 아닐까 한다.

번역은 기존에 있던 것을 약간 수정해보았는데, 많은 가르침 부탁드린다.

弄姮娥於空明兮 물에 비친 달빛이 항아를 희롱하는가
渺茫茫兮雲濤翻 아득하도다 구름처럼 뒤집어지는 물결
騎鯨兮那毋淸冷 고래를 타고 노니 어딘들 맑고 시원치 않으리
返玉樓焉遊遨 신선의 집으로 돌아가 노닐어나 보세
然瓌材之未展 그러나 뛰어난 재주를 펴지 못하였으니
慨時運之難遭 시운을 만나기 어려움을 슬퍼하도다
望明月兮夷猶 밝은 달을 바라보고 서성거리다가
思夫君兮歌而謠 낭군님 생각하며 노래하고 읊조린다네
白雲居士 백운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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