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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이른바 유학모칭론을 비판한다 (1)

by 신동훈 識 2025.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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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소장한 국립중앙박물관 설명은 다음과 같다. 1897년(광무 1) 11월에 작성한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臨溪面) 삼리(三里) 하임계동(下臨溪洞) 제3호(戶) 이원재(李元在)의 호적표이다. 정선군인(旌善郡印)이 찍혀 있다.조선시대에 작성된, 가족사항을 적어 신고하는 서류인 호구단자(戶口單子)와 달리 갑오개혁 이후 새롭게 작성된 호적표라는 것이 특징이다. 호주(戶主) 이원재는 나이 55세, 본관은 전주(全州), 직함은 유학(幼學), 생업은 농사이고, 정월 20일 묘시(卯時)에 출생하였다고 적고 있다. 사조(四祖: 아버지·할아버지·증조·외조)를 살펴보면 아버지는 용성(容聖), 할아버지는 류(柳), 증조부는 수천(洙天), 외조부는 전호(全鎬)이며 본관은 정선이다. 처 심씨(沈氏)는 나이 45세이며 2월 19일생이다. 자녀는 없어서 이 호는 이들 부부 둘만으로 구성되었다. 아울러 초가 두 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적혀 있다.

 
일반적으로 18-19세기에 급증한 유학幼學은 양반이 아니다. 

이것을 양반으로 간주하여 19세기에 양반이 급증했다고 보는 시각은 틀렸다

라는 시각이 있다. 

19세기가 되면 양반이 급증한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은 필자가 알기로 일본인학자 사방박四方博이다. 

그는 우리나라 대구부 호적을 분석하여

19세기까지 한국에서 유학으로 상징되는 양반호구가 급증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고, 

이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 의견이 있다고 본다 .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여러 설왕설래 중

19세기 유학幼學은 양반이 아니며

이들을 모두 양반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시각이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붙인 이름이 이른바 "유학모칭자"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타당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써 본다. 

우선 "유학모칭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유학이 아닌데 유학이라고 참칭했다는 뜻이니, 

여기서는 결국 양반이 아닌데 양반이라고 모칭했다는 뜻일 것이다.. 

우선 여기에 대해 조금 비판해 보자면, 

유학이라는것의 최종 결정권은 
결국 호적에 있다. 

유학은 호적의 직역 이름이므로, 

호적에 유학이라고 썼다면 그 뿐인 것이다. 

호적에 유학이라고 썼으면 그 사람은 유학인 것이지

"유학모칭자"라는 말은 타당한 표현이 아니다. 

호적에 유학이라고 써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자체로 "유학"인 것이다. 

"유학모칭자"를 주장하는 측은

 이러한 주장은 "양반이 아닌데 양반을 주장했으며" 

그러한 "유학모칭자"는 "양반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라고 한다. 

누구에게 안받아들여졌다는 것일까? 

당연히 기존의 양반들이다.

이른바 "유림의 공론"이라는 말이다. 

유림의 공론에서 본다면 이들 유학모칭자는 양반도 아니고, 

따라서 이들을 모두 양반으로 카운트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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