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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점패방지진鮎貝房之進 요미가타를 찾아 헤맨 시절

by taeshik.kim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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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겸차 1926년 풍납토성 탐방기

 
논문이 논문을 낳고, 책이 책을 낳는다.

학문을 직업으로 하는 자들이 논문과 책을 싸질러야 하는 이유다.

한 논문, 한 책 쓴다고 몇 년을 묵히는 놈들, 나는 믿지 않는다.

식민지시대 한국 고고학사 정리는 나로선 2000년 풍납토성을 준비할 때 욕심을 냈다.

그땐 점패방지진 요미가타도 모를 때라, 그거 찾는다며 온사방을 뒤졌다.

연구소 박물관 자료실을 가고 중앙도서관 귀중본 서고를 들락거렸다.

그래도 안 보이더라.

어느날 손보기 선생을 만났더니, 아유가이 운운하시길래 그때서야 아유가이 후사노신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땐 그랬다.

도쿄대학에서 관야정 자료가 정리되기도 전이었고 을축년 대홍수 직후 현장을 둘러본 일본 인류학도 겸차 뭐시기 하는 인간도 약력조차 구하기 힘들었고

곡정제일이며 야수건이며 하는 놈들은 어디서 굴러먹다온 뼈다귀인 줄도 감을 잡기 힘든 시절이었다.

오다 쇼고니 하는 이름도 하도 자주 보여 그때 내가 저놈들 인명사전 만들겠다고 뛰어든 시기였다.

그네들 논저 목록은 보이는대로 수집 배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흐지부지 에너지 방전되어 방치하고 말았다.

짤리고 보니 할 일 천지더라.

그때 포기한 일들이 하나씩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2017. 1. 16) 

 
*** 
 
점패방지진은 鮎貝房之進이라, 아유가이 후사노신이라 읽으며, 혹 아유카이라 읽기도 한다. 

겸차 운운한 사람은 기요노 겐지 청야겸차淸野謙次라, 훗날 그 풍납토성 탐방기(1926)는 전문을 입수해 전문을 번역해서 연합뉴스 기사로 처리했다. 

저때만 해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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