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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를 읽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참 이설이 많다는 것이다.
위키만 찾아봐도 그건 금방 알 수 있다.
정설은 뭐라고 하는데 이설이 정말 많다.
이건 이런 설이 있는데 다른 설도 있다
여기는 이렇게 설명이 있는데 다른 데는 또 다르다.
이게 뭐 일본 역사학자들이
사료비판 정신이 투철하고 의고의 기풍이 강해서 그런 게 아니다.
남아 있는 사료들이 분량은 어쨌건 간에
그 성격들이 다 고만고만하다 보니 어떤 사료 하나에 주도권을 안겨주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일급사료, 이급사료 운운으로 사료에 그레이딩까지 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건 일본적 환경에서 나온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이걸 따라 할 필요가 없다.
그쪽에야 고만 고만한 사료들이 바글바글 하니 그런 거고,
한국은 상황이 다르니
이런 부분에 있어 일본의 이설 제기를 사료비판 정신이 투철한 역사학의 본분처럼 인지하고
그걸 여기서 따라 흉내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적어도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사료의 측면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주어진 조건이 달라 연구의 풍토도 달라야 정상인데,
한국이 역사학에서도 일본 연구 풍토를 흉내내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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