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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지성계 주류로 침투한 주자성리학은 그 태생이 반불교다. 실제 주자의 각종 어록엔 요즘 이단에 대한 극언을 서슴지 않는 한국사회의 개독 윤리와도 흡사하다.
하지만 이들이 옹립한 성계 이씨는 성리학과는 거리가 전연 멀었으니
첫째 공부를 안했으며 둘째 생평을 전장에서 말 위에서 보냈다. 더구나 그는 철두철미 고려인이다.
이건 여진족 계통이냐는 문제와는 관계없다.
고려시대 지배계층에는 불교에 대한 증오가 거의 없다. 이들에겐 공자와 석가가 한몸이다. 부식 김씨가 그랬고 제현 이씨가 그러했으며 더구나 고려말 유학의 종장이라는 목은 역시 철두철미 석가의 재가 신도였다.
이는 석가를 증오한 소위 신지식인들에게 포박된 성계도 마찬가지라 망나니 아들 방원이한테 쫓겨난 뒤엔 회암사로 들어가 아주 중이 된 성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계는 중이다. 이 점 망각하면 안 된다. 머리 기른 중..이것이 성계의 정체다.
신왕조 개창 이후 불교를 폐하라는 상소가 빗발치자 야마 돈 성계가 말한다.
"유학의 종장인 이색도 부처 신도다. 씨잘데기 없는 말 마레이. 한 번만 더 지끼마 지기뿐데이."
척불에 맞서 호불을 해야 하는 성계에게 목은은 한줄기 빛이었고 탈출구였다.
목은을 죽이지 않은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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