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느 쪽이 YS이고 어느 쪽이 DJ냐 하는 점에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겠지만,
이승만과 김구는 본질적으로 해방정국의 YS-DJ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임시정부라는 것이 워낙 존속기간이 길고 그 활동양상도 부침이 컸으며,
대전 말기에는 국민당정부와 함께 충칭까지 밀려나간 탓에 고국과는 지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었고,
이승만의 경우 그 주요활동무대가 미국이었던 탓에 김구보다는 더 대전의 참상에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 두 사람이 한국의 독립에 있어 선무일등공신이자 호종일등공신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카이로선언에 한국의 독립이 훌러덩 들어가버렸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전모가 불투명하지만,
이 두 양반의 활동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은 부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카이로선언 주체가 중국 장개석, 영국 처칠, 미국 루스벨트인데, 이 중 처칠을 빼고 나면 어찌되었건 장개석과 루스벨트에게 뭐라도 말을 옆에서 계속 넣었을 만한 사람은 김구와 이승만을 빼고 나면 사실상 전무한 탓이다.
해방 이후를 생각해 보면, 이 두 사람이 한국의 우파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신생 대한민국은 아마 정부의 명분-당위성을 애초에 상실하고 남베트남과 비슷한 운명이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하겠다.
80년대 이후 해방정국의 중도주의, 좌우합작주의에 대한 평가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승만은 극우, 김구는 중도 정도로 포지셔닝을 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보면 김구도 이승만 못지 않은 반공주의자였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김구는 피살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 이후부터는 아마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남한 단정에 참여했으리라 본다. 선택의 여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김구가 남을 곳은 대한민국 외에는 없다.
이승만을 잘 모르는 쪽에서는 이승만이 임시정부와 대척점에 있었던 것처럼 쓰는 경우도 보는데,
이승만의 초대 대통령 취임선서에서 보듯이 이승만은 임시정부와의 끈을 놓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승만과 김구의 이데올로기와 포지션은 현재 한국현대사가 기술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왔고,
두 사람은 한국현대사의 YS-DJ의 관계와 유사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은 양쪽 모두, 임시정부와의 인연을 항상 의식했고,
대전 말기 임시정부를 승인해야 한다고 연합국에 줄창 주장을 했던 사람들도 이 두 사람이다.
김구가 중도?
NO. 김구는 중도가 아니다. 우파다.
이승만이 반임시정부?
천만에. 그에 대한 반론은 이승만의 초대대통령 취임사의 끝 부분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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