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예찬
이양하李敭河(1904~1963)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프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 마음이 비륵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처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을 듯하지 아니한가?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우리 연전 일대를 덮은 신록은 어제보다도 한종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문법 시간이 끝나자, 큰 무거운 짐이나 벗어 놓은 듯이 웃을 훨훨 떨며,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를 찾아 을라간다.
나의 자리래야 술발 사이에 있는 겨우 결터앉을 만한 조그마한 소나무 그루터기 지나지 못하지마는,
오고 가는 여러 등료가 나의 자리라고 명명하여 주고,
또 나 자신도 하루 동안에 가장 바쁜 시간을 이 자리에서 가질 수 있으므로
시간의 여유 있는 때마다 나는 한 특권이나 차지하듯이,
이 자리를 찾아 을라와 않아 있기를 좋아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나 우리 땐 국어교과서에 실려서 더 익숙한 글이라 청춘예찬과 더불어 명문으로 회자했다.
이양하는 1934년 이래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영문학을 강의하고 수필을 썼다.
해방 이후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옮겼다.
저 신록예찬 무대가 바로 연대 교내 청송대聽松臺라 흔히 靑松臺로 곡해한다.
예서 이양하는 연전 이라 했으니 연희전문이요 본관 서쪽 숲이 바로 청송대다.
지금 한창 청송대는 녹음이 짙다. 아마도 이 무렵 청송대에서 아아 한 잔 때리고 빨뿌리 한 대 물고서 저리 읊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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