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고난에서 해방한 요즘은 되도록이면 점심이나 저녁 약속을 정하지 않으려 하며, 날이 갈수록 실제로도 그리되어 가는 심플한 생활로 들어가는 징후 완연하다.
문제는 그에서 오는 허함이라, 무엇인가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아직도 있는 걸 보면, 놓으려면 멀었다 싶기는 하다.
그제부터 시도한 점심시간 보내기가 공장 인근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부속 자료실에 가서 이런저런 책이나 뒤지며(뒤진다 하는 까닭은 시력과 인내 때문이라, 그것이 바닥난 지금은 정독은 실상 불가능하다) 소일하는 일이라
어제 들른 서울공예박물관 자료실을 어슬렁거리다 보니, 같은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역사편찬원에서 근자에 전 3권으로 역주한 조선 숙종 연간 사대부 관료 엄경수嚴慶遂(1672~1718)가 승문원에 들어간 1706년을 시발로 삼아 사망하기 직전인 1718년까지 총 13년간에 걸쳐 쓴 일기 부재일기孚齋日記가 보이는지라
그 첫 권을 빼서는 무심하게 읽어내려가기 시작하는데 그에서 앞서 정리한
300년전 담당 공무원이 증언하는 어살 고기잡이의 고통
이 대목이 보이는지라, 저와 같은 증언은 그것이 절실히 필요로하는 사람한테 가야 한다는 그런 믿음이 나는 있어, 퍼뜩 저 자료를 보고서는 죽어나사나 어촌 민속조사한다 하고, 근자에는 그 경력을 농익게 풀어낸 조명치 특별전을 개막하고는 독주사이틀 중인 국립민속박물관 김창일한테 던지면서
"응아가 이런 거 찾았다. 고맙제?"
이 말은 곧 너는 이런 자료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는 의심에 바탕했으니, 천만다행으로 창일이가 여직 저 자료를 보지 못했더라. 남이 모르는 것을 찾아줬으면 그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내친 김에 저런 어살이 아직 서남해안 일대에 더러 남았으니, 어촌민속조사 심하게 한 창일이는 틀림없이 그것을 증언하는 좋은 사진이 많을 것이라, 반대급부로 어살 일종인 죽방렴 사진 좋은 것들로 보내주라 하고 부탁했으니
첨부하는 사진들은 그렇게 해서 받은 자료들이다.
정보의 홍수시대다. 내가 그토록 찾는 자료로, 어디에선가는 턱 하니 진열되어 내가 간택하기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얼마나 많겠는가?
예서 관건은 공유라 본다. 내가 다시금 저 어살 자료를 갈무리해서 소개하는 이유는 누군가한데는 그것이 갈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퇴임 이후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무척이나 고민되나 이런 작은 소일에서 내가 부여하는 쥐꼬리 만한 소명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저런 자료실이나 도서관을 앞으로 자주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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