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01.20 01:04:55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내 과거 블로그 포스팅이다.
경기 여주군 북대면에 고달사지高達寺址라는 옛 절터가 있다.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고찰로 고려시대에는 왕들이 특별히 보호하는 사찰로 번성했던 곳이나 언제 폐기되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현재 이곳에는 국보 4호인 고려시대 부도浮屠를 필두로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6호), 원종대사혜진탑(보물 7호) 및 석불좌(보물 8호) 등의 국가지정 문화재가 있으며, 이때문에 절터 전체가 사적 제382호로 보호받는 중이다.
2002년 7월 21일, 문화재청은 요상한 소식을 각 언론사 문화재 담당기자들 앞으로 전했다. 이르되 이곳 고려시대 부도가 도굴꾼들에 의해 상륜부相輪部 일부가 훼손됐다는 요지였다.
도굴 사실은 이곳 암자 스님에 의해 그 전날인 20일에 발견되어 관할 여주군청에 신고됐으며, 이에 같은날 문화재청은 직원 3명을 현지로 급파해 도굴피해 현황을 파악했다.
그 결과 부도는 상륜부 일부를 구성하는 보주寶珠와 보개寶蓋가 땅에 떨어져 몇 조각으로 훼손돼 있었으며, 이로 인해 옥개석屋蓋石에 있던 귀꽃 한 개 또한 부서졌음이 확인됐다.
도굴 피해를 본 고달사지 승탑 부도
당시 문화재청은 이 사건이 부도 내부에 유물 등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한 도굴꾼들이 옥개석을 나무로 받쳐서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상륜부 보주와 보개가 떨어지게 된 것으로 추정했다.
아!
이 사건은 혁혁한 전과를 기록하는 한국도굴사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지하에 계신 선배 도굴꾼들을 능욕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지금은 은퇴한 노회한 노굴꾼 선배들이 낯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만든 굴욕이었다.
아! 멍청한 도굴꾼들이여.
그들은 이 고달사지 부도가 1962년 국보로 지정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도굴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미 위대하신 선배 도굴꾼들께서 깡그리 훑고 지나간 자리인 줄을 몰랐던 것이다.
고달사지 부도 훼손전(왼)과 훼손 후(오른)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노라.
어찌하여 우리의 도굴 수준이 이 따위로 타락했단 말인가?
돌이켜 보건대 왜 이런 일이 생겼던가?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도 이 밤 후레시를 들고서 도굴을 하고 있을 땅꾼들에게 말하노라.
제발 공부 좀 하라!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피히테가 나폴레옹 치하 독일국민들에게 고했듯이,
에르네스트 르낭이 보불전쟁으로 패닉상태가 된 프랑스 국민들에게 고했듯
그런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간곡히 부탁하노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몸통은 복원이다.
제발
“요즘 도굴꾼들은 공부도 안 하나봐?”
이런 망신은 당해야 쓰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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