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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일본의 인문수준에 대한 생각

by 초야잠필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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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인문학 수준에 대해 약간 써 본다.

첫째로 에도시대 이전 일본 인문학 수준:

일본에서는 이를 굉장하게 포장하여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당시 대륙국가에 비하면 그 수준이 대단치 않다.

텍스트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낮고 무엇보다 글을 읽고 이를 향유하는 사람 숫자 자체가 적었다는 생각이다.

일본 드라마 보면 무가정권 실력자들과 무사들이 대단한 교양인인양 묘사한 것이 많은데,

사실 이들은 싸우기 바빠 책읽을 시간이고 나발이고 없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펠레한테 노벨문학상을 타라고 이야기하면 무리 아니겠는가?

이 시기 일본의 지식계란 공경들과 절의 승려들을 통해 가늘게 이어졌다고 보는데

대충 우리나라 무신정권 시대 문사들의 글짓기에 방불했다고 생각한다.

임란 이후 일본의 책이 고활자로 본격적으로 인쇄가 시작되기 이전에 목판인쇄가 보편화하지 않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필사본으로 커버 될 정도의 딱 당시 독서인구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둘째로 에도시대 이후의 일본 인문학 수준.

김 단장께서 좀전에 포스팅한 글에 자세히 나와 있어 더 쓰지 않겠다.

요는 먹고 살 것도 없는데 그걸 쪼개서 글 읽는 사람들 (조선)은 먹고 살만해서 공부 시작한 사람들 (에도 일본인)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임란 직후에 파송된 통신사 글에는 일본에는 글 읽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되어 있는 것이

에도시대가 본 궤도에 오르면 일본 물산의 풍요함과 지식 정보의 급증에 놀라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러한 지적 역전의 흐름이 사실 20세기까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인문학 수준 차이는 20세기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에도시대부터 그 흐름이 시작되었으며 일본이 한국의 인문학 수준을 압도한 것은 이미 과거 몇백 년에 걸쳐 있는데 지금 들어 비로소 추격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팔만대장경. 한국 전통시대 인문학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본다. 팔만대장경의 시대에 일본에서는 헤이케모노가타리가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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