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없는 나루히토 일왕 내달 8일 후계자 책봉의식
송고시간 2020-10-09 10:09
김호준 기자
당초 4월 19일 개최하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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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가 후계구도를 보면 실은 동아시아 세계를 관통하는 그 흐름을 그대로 잇는다는 사실을 엿보게 되거니와, 저들의 새로운 천황 즉위의식이라든가 천황위 후보서열 등등이 실은 우리한테는 사라진 그 전통시대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아직 일본 천황가가 여성에 대해서는 후보순위에서 배제한다는 사실을 유념할 수 있으니, 여권 신장과 더불어 공주한테도 후보 자격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 없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다만, 여성으로 천황위가 갈 경우 문제가 없지는 아니해서, 그렇게 되면 다시 그 후계 구도는 어찌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그 여성 천황이 낳은 자식들로 간다? 이게 생각보다는 좀 복잡하다.
그렇다고 일본 역사에서 여성 천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실체가 의심을 사기는 하지만, 여왕 시대가 분명히 있어 멀리 히미코라는 여왕이 있었다고 중국 기록에도 남았으며, 신공황후라는 인물도 있어 신라정벌을 했다고 떠벌리는 그런 여성이 있다.
좀더 확실한 여성 천황(실은 당시에는 천황이라는 호칭이 없었으므로 단순히 여왕이라 해야겠지만) 두번이나 왕위를 왔다갔다 하면서 황극천황皇極天皇이라고도 하고, 제명천황斉明天皇이라고도 하는 이가 최초로 기록할 만하며 이후 일본서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지통천황持統天皇은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천황이다.
이들의 경우 다 아들들한테 물려주었으니, 결국은 남자로 이어지는 황위 계통에서 가교 역할을 한 데 지나지 않는다. 남편이 일찍 죽어 아들이 천황이 되기까지 대리 천황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보다시피 철저히 적통 황자 중심으로 천황위는 계승한다. 히로히토한테는 장남 아키히토와 차남 마사히토가 있으니, 개중에서 아키히토가 황위를 계승했다. 아키히토한테는 장남 나루히토와 차남 후미히토가 있다.
문제는 이 나루히토한테는 왕자가 없다는 점이다. 아이코라는 공주만 있다. 보통 이런 경우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남동생이 있으면 그리 가거나, 혹은 아예 한 단계 건너뛰고 조카한데 가는 방법이 있다. 한데 생각보다 적통 왕자를 두기가 굉장히 어렵다. 예컨대 나루히토나 후미히토 모두 아들을 두지 못할 수도 있다. 이때는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저 앞쪽에 있는 아키히토 형제, 곧 그의 동생 마사히토로 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문제는 정상적인 경우라는 후대 왕은 모름지기 전대 왕보다 대수가 낮아야 한다. 조카한테서 삼촌한테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삼촌이 살아있어도 삼촌한테 가는 일은 쿠데타 같은 비상상황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가 없다. 당연히 이 경우는 마사히토 아들이나 혹은 손자한테서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
왜 후대 왕은 선대왕보다 대수가 낮아야 하는가? 종묘제도에서 비롯한다. 후대 왕은 선대왕을 계승한 것이므로 생물학적 관계를 뛰어넘어 둘 사이에는 부자 관계가 성립한다. 후대왕인 삼촌이 조카인 선대왕을 종묘에서 제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반드시 대수를 낮추어 후계자를 고르는 것이다.
물론 형제 관계로 계승될 수 있다. 이 경우 동생이 형님을 계승하므로 동생이 형을 제사하는 일은 지극한 상례이므로 이 경우 반발심은 훨씬 덜하다.
일본 천황가가 바로 이 방법으로 동생을 후계자로 책봉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도 법에 따라서 하는 것으로, 관련 황위 계승순서를 법률로 정해져 있다. 이 법률이 근대법이라는 허울을 쓰기는 했지만, 전통시대 그것을 답습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동생이 다음 왕위 계승자일 때 조선시대에는 왕세제王世弟라 했다. 아들이면 당연히 왕세자王世子라 했겠지만, 동생이므로 아들로 삼을 수는 없어서 이리한 것이다. 영조가 바로 왕세제로 등극했다. 형 경종한테는 후사가 없었다. 그래서 연잉군은 동생으로서 후계자로 책봉되어 훗날 영종이라는 묘호廟號를 받게 된 것이다.
이걸 보면 일부일처제가 정착한 현대사회에서 왕위가 얼마나 위태위대한지 엿볼 수 있다. 정처한테서 왕이 적자를 둔다는 보장이 없다. 이렇게 되다가 결국 혈통이 끊어질 공산도 크다. 그때는 진짜로 여성 천황을 들고 나와야 한다.
옛날 제왕들이 첩을 많이 거르린 이유는 간단하다. 혈통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물론 이 경우 자식, 특히 아들을 너무 많이 두면 문제는 형제간 쌈박질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의 안전장치를 두는 데 바로 적서차별이다.
조선왕조에서는 정비랑 사이에 난 아들은 대군大君이라 하고, 딸은 공주公主라 했으며, 첩 소생은 아들은 그냥 君, 딸은 옹주翁主라 해서 신분을 엄격히 구분했다. 원칙으로는 첩실 소생인 군은 왕위계승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그런가? 예외없는 법칙 없다고 왕이 의외로 정처한테서 아들을 두는 비율이 얼마되지 않는다. 둔다 해도 비실비실해서 일찍 죽거나 아예 사람 구실 못하는 때도 있다.
정 방법이 없을 적에 저 그림에서 아키히토 동생인 마사히토 혈통을 찾아간다. 마사히토까지 아들 손자가 없다면? 그때는 더 거슬러 올라가 히로히토 동생들 후손을 찾아나서야 한다. 이런 식으로 얼토당토 않은 자격으로 시건방지게 왕이 된 인물로 조선시대를 보면 선조가 있고 고종이 있다. 이것도 아주 웃긴다.
참 왕실 구성원 중 당연히 왕과 왕비는 품계가 없다. 그 이상인 왕대비도 당근 빠따로 없다. 대군과 공주도 품계가 없다. 그래서 정1품도 대군 공주를 만나면 고개를 숙여야 했다. 문제는 첩들과 그 후손인 군과 옹주였다. 군과 옹주는 대개 정1품이 주어진다. 첩들은 이게 좀 묘해서 다 품계가 있는데 정1품 이하로 모조리 배열됐다.
품계가 있다는 것은 왕위 계승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쿠데타 같은 비상 방법 말고는 품계가 있는 사람들이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성골 진골? 이거 아주 웃기는 짬뽕이라 이게 무슨 거창한 비밀이나 되는양 신라사학계에서는 떠들고 자빠졌는데, 신라 사람들이 무슨 그리 고단수라고 유별나게 신분을 차별했겠는가? 성골은 품계가 없다!!!! 진골은 품계가 있다!!!
이 차이가 전부다. 품계가 없으니 성골은 왕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왜 진골로 김춘추가 왕위 계승한 일이 대서특필되었는가? 왕위 계승 자격이 없는 품계가 있는 인물로 왕이 된 첫번째 케이스인 까닭이다.
김춘추는 지 할아버지 진지왕까지는 성골이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이 놈이 여자 너무 밝히다가 쫓겨나 유폐되었다. 왕궁에서 쫓겨나니, 성골 지위를 상실해 버렸다. 가뜩이나 초대형 사고를 친 데다가 주거지까지 성골의 구성하는 절대 요건인 왕궁에서 쫓겨나게 되니, 1단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골로 강등됐을 뿐이지 무슨 거대한 신라사 비밀이 있겠는가?
품계가 있는가 없는가는 이처럼 중요하며, 이걸 알면 성골 진골을 너무나 싱겁게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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