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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그들이 옷을 벗었다, 그리고 밭을 갈았다

by taeshik.kim 202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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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나는 《미암집》에서 미암 유희춘이 증언하는 함경도 지역 나경裸耕 습속을 대전 괴정동 출토품으로 전하는 농경문청동기 나경 문양을 이해하는 첩경일 수 있음을 지적질한 기사를 2005년에 썼음을 상기했다. (이와 관련한 2005년 관련 기사 일화는 맨 뒤에 첨부하는 이 블로그 포스팅 참조)  

 

이를 탈고하기 전 나는 그 워밍업으로 아래 기사를 손을 댔다. 

 

 

소를 이용한 밭갈이

 

 

2005.03.29 10:46:52
<그들이 옷을 벗었다, 그리고 밭을 갈았다>
조선전기 문집 추린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이는 먼 변방 비루한 풍속에서 나왔으니, 생령(백성)에게는 질고(疾苦)가 되니 식자(識者)는 이를 해괴하다 여기나  많은  사람이 즐거워한다."

 

자위행위를 일삼는 아들을 훈계하는 내용까지 담은 미암일기(眉巖日記)로  유명한 조선중기 때 지식인 유희춘(柳希春.1513-1577). 그가 죽은 뒤 편집된 문집 미암선생집(眉巖先生集.권3 '잡저')에 수록된 '비루한 변방 습속'이란 무엇인가?

 

이런 내용을 담은 잡글 제목이 '입춘 나경에 대한 논의'(立春裸耕議)라는  데서 미암이 해괴하다고 비난하고 있는 습속은 그 실체가 드러난다.

 

 

농경문청동기

 

나경(裸耕)이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다. 옷가지를 훌렁 벗어 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밭을 가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습속이 도덕군자를 자처하는 미암에게  얼마나 '해괴'하게 생각되었을까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미암의 증언에 따르면 나경은 왕도(王都)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주로 함경도)에서 입춘일에 행해지던 습속이다.

 

"매년 입춘 아침에 토관(土官. 지방관아)에 모이게 하고는 관문(官門) 길  위에서 나무로 만든 소(木牛)를 몰아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심고 거두는 형태에 따라  해를 점치고 곡식의 풍년을 기원한다. 이 때 밭을 가는 자와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옷을 벗게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괴이한 입춘 행사를 치러야 했는가? 다시 미암의 증언이다.

 

"노인들이 서로 전하기를 추위에 견디는 씩씩함을 보고 세난(歲暖)의 상서로움을 이룬다고 한다."

 

흔한 말로 그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그들은 옷을 벗어던졌다'는 말이다.

 

농경문청동기

 

19세기 이후 조선후기가 되면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필두로 하는 소위 동국의 세시 관련 문헌이 쏟아진다. 이런 현상을 이른바 실학운동이라든가 소중화주의 움직임과 연계해 주체성의 자각 정도로 학계에서는 해석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 왜 이 시기에 세시풍속기류가 쏟아지는가?

 

그 답의 일단을 우리는 조선의 과거시험 경향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과거시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 율곡 이이(李珥.1536~1584).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예조(禮曹)에서 출제한 시험문제 답안지인 책문(策問)에 나타난 율곡을 보면 다시금 그의 박학다식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시험문제는 세시를 논하라는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율곡의 책문은 청산유수와 같다. 각종 중국 고전을 동원해 그 논거를 뒷받침하는가 하면 동국(東國), 즉  한반도 세시 습속을 조목조목 논하는 율곡은 요즘의 민속학자를 방불한다.

 

농경문청동기의 나경裸耕

 

과거시험 단골 출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세시에 관한 것이었음은 율곡의 책문뿐 아니라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라든가 택당 이식(李植.1584~1647)의 문집에도 역시 이와 관련된 책문이 수록돼 있다는 점에서도 단적으로 확인된다.

 

왜 조선후기에 세시기류가 연이어 등장했는가? 그 답은 과거시험에 있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번역 발간한 '한국문집총간 8-100권'에 수록된 내용 중에서도 세시풍속 관련  자료만 추출하고, 또 그것들을 총론ㆍ월별ㆍ일별ㆍ주제어별로 분류하고 재구성해 놓으니 이토록이나 훌륭한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이 완성됐다.

 

 

인간 밭갈이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홍남)이 추진 중인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 시리즈의 하나로 이번에 선보인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문집편)은  '삼국ㆍ고려시대편'과 '신문ㆍ잡지편(1876~1945)'에 이은 세 번째 성과물로 그 의의가 자못 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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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참말로 환장할 노릇 중 하나가 자기 스스로 깨친 바를 내가 이리 밝혀냈노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점이니, 이 나경이 그러했다. 아래 2005년 내 기사에서 말하는 나경 습속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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