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포착] 남북 분단사의 대참극…'아웅산 테러 사건'
송고시간 2020-10-10 07:00
임동근 기자
www.yna.co.kr/view/AKR20201006129300005?section=society/accident
그땐 미얀마가 아니라 버마라 일컫던 시절이었다. 그 도읍도 양곤이 아니라 랭군이라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전두환은 버마를 국빈방문 중이었으니, 현대 버마 건국의 아버지 아웅산 국립묘지를 참배할 예정이었다.
전두환을 기다리면서 묘소 앞에 그를 수행한 사람들이 도열해 있던 그 자리에서 폭탄이 터졌다.
역사는 이를 아웅산테러라 일컫는다. 서남아시아 및 대양주 6개국을 순방에 나선 전두환으로서는 버마가 그 첫 방문지라 현지시간 오전 10시 25분쯤 폭탄이 터지면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서석준, 외무부 장관 이범석, 상공부 장관 김동휘, 동력자원부 장관 서상철을 비롯한 공식 수행원과 취재진 17명이 숨졌고 14명이 중경상했다. 당연히 나머지 순방 일정은 자동 빵으로 취소됐다.
북한 소행으로 드러난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렀다. 적대하는 국가 원수를 암살하려 했으니 말이다.
사건 발생 사흘만에 버마정부는 강민철을 비롯한 북한 공작원 2명은 체포하고 1명은 사살했다.
그 참사에서 기적으로 살아남은 이로 우리 공장 사진부 대선배 최금영 기자가 있다. 그는 폭발 직전 우리 정부 대표단이 묘지에 도열한 모습을 카메라에 포착했다. 폭발과 더불어 최 기자는 쓰러져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가 흘린 핏물은 렌즈가 다 깨져 나간 니콘 카메라 위로 흘려내렸다.
결국 이 사건으로 줄곧 후유증에 시달린 최 기자는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마지막에 포착한 이 사진, 그 흑백사진은 기적으로 살아남았다.
카메라 테스트를 위해 셔터를 누르고 다시 컬러필름으로 갈아넣는 순간 폭탄이 터졌으니 말이다. 그때도 통상 카메라 기자는 1대만 휴대하지 않는다. 렌즈가 깨진 그 카메라가 포착한 그 사진이 살아남았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본사 1층에는 그날의 참상을 기리는 그의 사진기와 마지막 사진이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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