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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망하지 않고 만주부터 조선, 일본땅을 여전히 통제하고 있었다면
고고학적 사실 중 비파형-세형 동검 문화 만큼
정치 이데올로기로 쉽게 이용 가능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이는 중국문명과 뚜렷이 구분되는 문명의 특징이 있고,
또 요하유역에서 만주일대,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하나의 문명권으로 묶는 것도 가능하다 (아래 그림 참조).
아마 그 이름은 한국청동기문화나 요령청동기 문화 대신 뭐라도 다른 이름을 일본인들은 여기에 붙였겠지만
어쨌건 이 문화는 요하유역에서 만주, 조선과 일본을 하나로 묶어 다스리는
역사문화적 정당성을 웅변하는데 백프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일본이 내선일체를 주장하는데 있어
한국청동기문화와 야요이문화의 연결성 만큼 중요한 선전도구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일본이 조선을 점거하고 있을 때 까지만 해도
한국청동기문화와 야요이문화의 연결성이 제대로 입증된 상태가 아니었고,
요하유역의 청동기문화가 요동반도를 거쳐 만주일대, 한반도, 일본열도까지 같은 영향권 안에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이를 정확히 알았다면?
아마 일본의 관학자들은 이 문화에 뭐라도 이름을 따로 다르게 붙였을 것이고,
일본제국이 요하유역에서 만주와 조선, 일본을 한꺼번에 묶어 다스릴 수 있는
역사적 정당성은 여기에 있다고 대대적으로 내외에 선전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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