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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문명보다 민족, 그 빛고 그늘

by 초야잠필 2024.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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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문명을 일으켜 세웠다면 좋겠지만 

이 세상에 그런 민족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외부로부터 문명의 씨앗이 들어와 싹트기 마련이고

이건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예외가 없다. 

유럽사를 보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 남부 등 로마사와는 관련을 맺은 지역의 국가들은

로마사를 문명사 도입의 입장에서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은 소위 로만 브리튼을 문명사의 개명으로 보며, 

프랑스 역시 골을 추앙하기는 하지만 로만 골을 프랑스 문명의 시작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어떤 유럽 학회가 뮌헨에서 열려 필자도 거기 참석했을 때

학회 연회 자리에서 대회장이 건배를 제안하며

우리는 뮌헨을 로마의 북쪽 끝이라 생각한다고 하며 이야기 했는데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모두 로마를 바라보는 유럽사의 시각을 가리킨다 하겠다. 

실제로 처칠은 A history of the English Speaking Peoples(첨부사진)라는 자신의 저작에서 

영국사의 시작을 시저의 영국침공에서 시작했다. 

이전에도 토착민의 역사가 있었지만 이를 생략하고 시저부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명사 관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경우도, 

역사를 보는 관점은 20세기 이전은 이러한 문명사의 관점으로서

따지고 보면 기자에 대한 숭모도 이러한 관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가 넘어오면서 문명보다는 민족을 더 선택하게 되어 

이민족 문명의 이식보다는 

우리 민족의 원시시대를 더 선호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렇게 외삽된 문명을 통채로 부정하면서

한국사의 앞머리가 많이 비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겠다. 

외삽 문명을 부정하면서 날라가버린 이 부분을 

그 후 우리가 또 충실히 채웠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다. 

예를 들어 낙랑조선은 한군현의 일부라는 이유로

한국사에서 통채로 들어내는 것이 맞는 시각인가? 

낙랑조선이 고조선을 이어받았고 

그 문화적 여파가 삼국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 주민의 대부분은 한국사에 합류했다는 점에서

군현시대의 낙랑은 한국사에서 제외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제 나라도 좀 살게 되었고 과거의 식민지-후진국으로 항상 외세를 겁내던 나라도 아니고 한데

이러한 문명사의 관점을에서 본 유연함을 한국사에서도 이제 좀 복원하여 시도해 볼 필요도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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