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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일제시대 신문기사에도
족보에 굳이 서자를 표기하겠다는 통에 적서간 싸움이 벌어져
작게는 소송전, 크게는 패싸움까지 벌이는 신문기사가 나오는 바,
사실 족보에 서자를 표시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집안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족보에서 서자 표기가 사라지는 것은 19세기 후반 되면 왠만한 집 족보에서는 서자 표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일제시대까지 서자를 굳이 표기하겠다고 박박 우기는 것은
문제가 있는 행동으로, 서자들 쪽에서는 당연히 들고 일어나 패싸움이라도 벌여 막고자 했을 것이다.
이처럼 일제시대 신문기사에는 서자를 표기하려다 싸움이 난 족보 이야기를 가끔 보도하고 있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이런 상황이 일반적인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일제시대 기사르 보면, 이 당시 족보란 이미 상업화하여
구매자라 할 종원들의 입장과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굳이 서자를 박박 표시하여 잠재적 구매자와 척을 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19세기 후반 보면 벌써 족보에서 서자 표기가 거의 사라지는 것을 보면,
족보의 상업화는 이미 19세기 후반에는 거의 완성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많은 집안의 경우,
19세기 후반의 족보가 20세기 일제시대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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