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 식민지시대 교육제도는 해방 이후가 되면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하면 해방 전과 해방 이후에 정체성 변화가 크기 때문에, 해방 전의 고등학교를 "구제 고등학교"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구제중학교"도 있고 "구제전문학교", "구제대학"도 있다. 교육기관 앞에 "구제舊劑"라는 말이 붙으면, 일제시대 일본의 교육제도 아래 편성되어 있던 학교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일제시대 조선인 대상 교육 기관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우리가 착각을 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그 당시 실체보다 매우 부풀려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것을 하나 써보겠다.
우선 "고보高普"는 고등학교가 아니다.
이건 사람들이 가장 착각하는것 중의 하나인데, "고보"라고 하면 일제시대 고등학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보는 고등학교가 아니다. 고보는 보통학교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진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이다.
예를 들어 "양정고보"하면 양정고등학교가 아니다.
양정고보를 나온 일제시대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손기정선생의 예를 보자.
손기정 선생 학력은: 보통학교--양정고보--보성전문--메이지대 전문부 (법학졸업)이다.
양정고보를 입학하기 전 학력은 보통학교 졸업이었으므로 양정고보는 중학교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보성전문을 들어갔는데 이는 양정고보가 중학교 학력이므로 중졸이 지원가능한 보성전문으로 입학한것이다.
만약 손기정 선생이 양정고보 졸업후 대학으로 들어가려면 "대학예과"를 졸업하거나 아니면 "고등학교"를 나와야 했다. 그런 자격이 없었으므로 보성전문으로 진학한 것이다.
선생이 보전을 졸업했지만 여전히 학사학위가 아니었으므로 다음 단계는 메이지"대학"으로 들어가 추가 교육을 받고 "법학사"가 된것이다.
그러면 왜 선생은 양정고보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보성전문으로 입학했을까?
간단하다.
조선에는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일본 내지에는 총 38개 고등학교가 있었고 여기에서 매년 21만명의 고등학교 졸업생이 나왔다.
이들은 대학본과에 바로 진학이 가능했다. 쉽게 말해 경성제대 같은 "구제대학" 본과에 바로 진학 가능한 사람이 일본 내지에 21만명이 매년 쏟아져 나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선에는 "고등학교"가 하나도 없었다.
조선에 "고등학교"에 준하는 교육기관은 경성제대 예과 딱 하나였다.
쉽게 말해 경성제대 본과에 진학가능한 사람이 일본에는 21만명씩 매년 배출되는데 반해 조선의 경우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이 전혀 배출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선인이 경성제대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고보를 졸업한 후 경성제대 예과를 들어가 고등학교에 준하는 자격을 획득한 후 경성제대 본과를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일제시대에 고등교육기관으로 올라갈수록 조선인이 더 진학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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